▲황토현 전적지에서 건네다 보이는 옛 동학농민혁명 기념관(왼쪽)과 황톳빛의 새 전시관의 모습. 왼쪽 들판에 세워놓은 작은 기둥들은 당시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던 여러 지역을 상징하는 조형물이다.
서부원
전북 정읍에 자리한 황토현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동학농민혁명 2주갑이던 2014년 반 아이들과 함께 답사한 뒤로 처음이니 햇수로 얼추 8년 만이다. 여느 도시의 수변공원처럼 말끔하게 단장되어 있어 언뜻 유적지라기보다 산책하기 좋은 쉼터 느낌이다.
2004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 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유적지 정화 사업이 본격화된 이후의 변화라고 한다. 공식적 용어가 '동학농민혁명'으로 정리되었고 기념일이 지정되었으며 곳곳에 기념관이 지어졌다. 참고로, 지금 교과서에서는 동학농민혁명과 동학농민운동이 혼재돼 사용되고 있다.
최근 이곳에 세워진 전시관과 추모관은 향후 건립될 다른 지역 기념관의 모범으로 손색이 없다. 일단 주변의 자연 풍광을 가리지 않도록 최대한 자세를 낮추었다. 건물 벽도 튀지 않도록 주위의 황톳빛을 그대로 따랐다. 각진 모서리만 아니면 땅인지 건물인지 구별하기 힘들다.
건물에 들어가려면 우선 내려가야 한다. 낮은 만큼 걸음걸이도 낮춰야 한다. 내부는 전시관이라기보다 IT 기술을 십분 활용한 첨단 강의실 느낌이다. 서서, 때로는 앉아서 강의를 듣다 보면 어느새 출구에 이른다. 전시물 하나하나 몰입도가 높아 해찰할 겨를이 없다.
전시관을 나와 잠시 숨을 고른 뒤 출구 정면의 추모관에 들어가도록 설계되어 있다. 내부에는 동학농민혁명 당시 희생당한 이들의 이름을 적은 위패가 가나다순으로 사방 벽에 모셔져 있다. 어두운 정사각형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누구라도 옷깃을 여미게 될 것이다. 말 없는 공간이 말하는 공간이다.
대지와 합일한 두 건물을 보고 나면 옛 기념관 건물은 유독 구태의연해 보인다. 그래도 당시에는 내로라하는 건축가가 설계한 야심작이었을 텐데 말이다. 전통 기와집을 형상화한 듯도 하고, 언뜻 석굴암 본존불이 모셔진 감실이 연상되기도 하는, 나름 멋을 부린 건물이다.
동학농민혁명 기념재단이 입주해있는 이곳은 통층으로 된 내부 공간은 넓지만, 관람 동선이 엉성하고 전시물의 내용도 고답적이다. 관리 상태마저 허술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영상물도 있다. 당장 공간의 재구성이 필요할 성싶다.
건물의 외관도 마치 황토현의 주인인 양 주변의 풍광을 가리고 선 느낌이다. 들판 건너편의 황토현 옛 전적지와 자웅을 겨루려는 듯한 위치도 어색하다. 걸어서 오가기에는 거리 또한 만만치 않아 접근성도 떨어진다. 옛 전적지의 넓은 주차장에는 잡풀만 무성하다.
화장실만 개방되어 있을 뿐, 기왓장을 얹은 옛 건물들은 문이 닫혀 있다. 동학농민혁명의 필수 답사 코스였던 이곳의 활용 방안을 서둘러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행인 건 조만간 정비가 될 것이라니 두고 볼 일이다.
영웅 중심의 역사관 벗어난 동학농민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