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5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사마르칸트 관광센터에서 열린 제22차 SCO 국가원수회의와 별개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우흐나긴 몽골 대통령과 회담하고 있다.
TASS=연합뉴스
러시아가 결국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위한 부분동원령을 발령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지난 21일 텔레비전 연설을 통해 "조국, 주권, 영토의 보전과 해방된 영토에서의 안전 보장"을 위한 부분적 동원령을 발령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 가운데 3만여 ㎢를 수복했다. 우크라이나는 하르키우를 비롯한 국경 지대 핵심 도시를 장악한 상황이다.
푸틴 대통령의 텔레비전 연설 계획이 알려지자 러시아가 전쟁을 포기하는 것 아니냐는 예측이 나왔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러시아는 부분적 동원령을 통해 30만명에 달하는 병력을 우크라이나 전선에 투입하기로 했다.
러시아는 그동안 별도의 동원령을 발령하지 않고, 기존 상비군만으로 전쟁을 치렀다. 이것은 러시아 국내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반발 여론이 크게 터져나오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3월 7일, 우크라이나 전쟁에 징집병을 투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선언한 바 있다.
러시아가 선언한 이번 동원령은 총동원령은 아니다. 학생 등은 징집 대상에서 제외되며, 예비군 가운데 일부만 징집 대상이 된다. 이들은 훈련을 거친 뒤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점령지역의 안전보장 임무에 투입될 예정이다.
이러한 소식이 알려지자 러시아 내에서는 반발 여론이 일고 있다. 러시아 전국 37개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인 반전 시위가 일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전국적인 반전시위는 처음이었다. 시위 과정에서 800여 명이 체포되기도 했다.
러시아 국민들의 국외 탈출 행렬도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일부 국가에서는 이미 러시아 관광객의 입국을 불허한 상태다. 루블화 가치는 폭락하면서 지난 7월 이후 환율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제까지 모집병만을 동원해 치러지던 전쟁이 일부라도 징병제로 전환되면서 러시아 국민 여론에 남길 상처는 크다. 러시아가 동원령을 발령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다. 전선에서만 벌어지던 전쟁은 이제 러시아 전 국민의 전쟁이 되었다.
러시아 정부는 분명 징집은 없을 것이라 약속했지만, 약속은 깨지고 말았다. 아직까지는 2500만 명에 달하는 예비군 중 30만이라는 극히 일부만 징집된 전쟁이지만, 이제는 언제 자신도 징집의 대상이 될지 알 수 없는 전쟁이 되었다.
러시아는 이제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전이 될 것이라고 분명히 선언한 것과 다름없는 셈이 되었다. 전선에서 순순히 물러나지 않을 것이며, 국가적 역량을 소모하더라도 전쟁을 연장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제 이 전쟁은 승리와 패배의 전쟁이 아니다. 전쟁의 승패는 사소한 것이다. 이제 전쟁의 승패와 관계 없이 러시아의 한 시대가, 푸틴의 시대가 악몽으로 종결될 것은 분명해졌다. 장기화되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두 국가를 넘어 이 세대 모두가 공유하는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그 기억이 남아있는 한,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러시아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1차대전 참전을 위해 도입한 징병제는 러시아 제국 멸망의 직접적 원인이 되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소련 붕괴의 간접적 원인이 되었다. 푸틴 대통령에게 "위대한 러시아"와 "위대한 슬라브"는 중요한 정치적 언명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위대한 러시아" 위에서 위대해져야 하는 것은 국가인가, 국민인가. 국민의 일방적 희생 위에서 "위대한 국가"를 말할 수는 없다. 동원령이 시행되며 전쟁이 국가를 잠식하고 있는 이때, 이제 러시아의 시민들은 보여줄 수밖에 없다. "위대한 국가"를 만드는 "위대한 국민"은 무엇인지, "위대한 러시아" 안의 "위대한 러시아인"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위대한 국민"이 만드는 민주적 정치가 무엇인지를, 이 정권에게 보여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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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러시아 부분동원령 발령, 중요한 건 국가인가 국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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