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드가 살아있어야 후드티
최혜선
인터넷 원단 쇼핑이 15년차쯤 되면 화면으로만 봐도 대충 각이 나온다. 매번 사던 곳에서 사다보니 원단 쇼핑몰의 주인장이 원단을 들여오는 선택 기준도 익숙해졌다. 천의 두께를 표현하는 단어들과 실제 받은 천의 두께 간의 상관관계를 경험으로 익혀 두다보니 상세설명을 읽으면 어느 정도 두께일지 감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내 돈 내고 산 물건 중에 가장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건 역시 원단 택배다. 문 앞에 배송된 꾸러미를 집으로 들여와 열어볼 때 그렇게 설렐 수가 없다. 이미 다 보고 고른 천들인데 실물로 보면 어떨지, 머리 속에서 상상한 천과 실제로 배달된 천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언박싱의 순간에는 항상 행복한 갈림길 위에 선다.
택배 비닐을 조심스레 뜯은 후 원단 하나하나 포장 비닐을 벗기고 천들을 쓰다듬는다. 엄지와 검지, 중지를 사용해서 원단의 두께를 느껴본다. 잘 접혀온 천들을 펴서 거울 앞에서 둘러보고 허리춤에 대어 보기도 한다. 결론은 금방 나온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좋거나 딱 생각한 그 느낌이어서 만족하거나 아니면 '아 실제로 보고 사는 거였으면 안 샀을 원단이다', 하며 실망하거나.
반대로 말하면 인터넷 원단쇼핑으로 갈고 닦은 15년차의 눈썰미로도 직접 눈으로 보고 만져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영역이 있다. 거기에 더해 눈으로 볼 때는 별 감흥을 주지 않던 천들이 옷으로 변신했을 때, 천으로 보았을 때는 느끼지 못하던 매력을 발견할 때가 있다.
평범해 보이던 원단인데 바지를 만들어 놓으니 입었을 때 편하고 무릎도 안 나오고 날씬해 보이는 마법을 부리는 경우가 그렇다. 그런 경험을 할 때마다 아직도 모르는 게 많다는 걸 절감하게 되는 한편 괜시리 희망이 샘솟는다.
이렇게 평범해 보이는 아니 평범해서 눈에 잘 띄지 않는 나에게도 사람들을 깜짝 놀래킬 반전 매력이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말이다. 반대로, 겉으로 보기엔 평범하지만 알고보면 다듬어지지 않은 다이아몬드 같은 존재를 알아보는 능력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회사에서 같이 일 할 사람을 가려낼 때도 인터넷으로 천을 고를 때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력서를 통해 누군가를 들여다보는 것은 모니터 화면 너머로 천을 보는 것과 닮았다. 많이 접해 보면 경험치가 쌓이지만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도 분명히 있다.
이력서를 들고 정장을 입고 면접을 보러왔을 때는 알아볼 수 없었던 숨겨진 자질들은 함께 일을 해봐야 비로소 보인다. 모니터 너머로 좋아보여서 선택했는데 배송되고 난 후에, 혹은 옷으로 만들어 보아야 비로소 진가를 알게 되는 원단처럼 말이다.
원단이든, 사람이든 속단은 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