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적으로 배영 훈련을 하며 누구나 각자 잘 하는 영법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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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 훈련을 하는 2주 내내 나는 선두에 섰다. '내가 왜?' 처음엔 낯설었다. '늘 맨 뒤에서 쫓아가기 바쁜 나였는데…' 배영만 죽어라 하다 보니 낯선 생각이 사라졌다. '난 수영을 못해'라는 생각 앞에는 '자유형이 느리기 때문에'라는 나도 모르는 조건이 있음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자유형을 잘한다'가 '수영을 잘한다'는 아닌데도, 늘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집중적으로 배영 훈련을 하며 누구나 각자 잘 하는 영법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의 1등 경험보다 우리반 에이스의 부진이 더 강렬했다. 매끈하고 탄탄한 역삼각형의 몸매로 날렵하게 물살을 가르는 그를 따라잡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선두를 내놓지 않을 것 같던 그가 캔 훈련에서는 좀처럼 실력 발휘를 하지 못했다. '하나를 잘 한다고 모든 걸 잘 하지는 않는구나.' 이런 생각이 드니 수영에 자신감이 붙었다.
캔 훈련을 하며 자세히 살펴보니, 평영을 집중적으로 연습하는 날엔 여자의 선두 비중이 높았고 힘이 필요한 자유형이나 접영은 남자의 선두 비중이 높았다. 남녀의 신체 조건 상 각자 유리한 영법이 따로 있고, 개인의 선호에 따라서도 각 영법의 속도가 천지 차이란 것을 알게 됐다.
사소한 생각의 변화
캔훈련은 사건이었다. 스스로를 작게 보는 나의 시선을 바꾸어주었다. 어느 때보다 강사님의 칭찬 세례가 쏟아졌다. 선생님이 인정하는 '공식적으로' 잘 하는 사람이 되고 보니,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달콤한 칭찬을 더 얻어내고 싶었기에.
생각만 바뀐 건 아니다. 눈에 띄게 차이 나는 확실한 증거 앞에 '나는 못해요'라고 뺄 수가 없게 됐다. 적어도 배영만큼은 잘한다고 인정 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내 생각은 큰 변화를 겪었다. '못하는 사람'에서 '잘 하는 사람'으로. 생각의 변화는 사소했지만, 이후 찾아온 변화는 크다.
다시 자유형 훈련이 시작되었다. 평소와 달리 사람들이 자꾸 내 뒤에 섰다(보통 자신의 속도를 파악하고 흐름에 방해되지 않는 적당한 위치에 셀프 줄서기를 하는 게 수영장 매너다). 2주 전의 나였다면 적극적으로 자리를 내주며 뒤로 가기 바빴을텐데 이날은 내 자리를 지켰다.
선두 그룹에서도 방해되지 않고 흐름을 잘 맞출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 마음처럼, 자연스럽게 흐름에 올라 한 시간을 보냈다. '이게 되네? 정말 되네?' 자신감을 장착하니 다른 영법에서도 제법 오른 실력이 느껴졌다. 기쁨도 차올랐다.
평소 나는 남들이 나를 보는 실력보다 낮춰 보는 편이다. 기준이 높은 편인데, 늘 위를 보고 살기 때문에 나에게 만족하는 날이 많지 않다.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니 내 실력은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수영도 마찬가지다. 프로 선수나, 전문 강사를 스승 삼는 내 실력이 기대에 미치는 건 쉽지 않다. 캔 훈련은 나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어 놓았다. 나는 수영을 못하는 사람이 아니며 수영에서도 내가 1등 할 수 있는 분야가 있음을 알려주었다. 이 생각은 자신감으로 연결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