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미 커피클레이 대표를 9월 27일 만났다.
희망제작소
워킹맘이던 고유미 커피클레이 대표는 큰아이가 네 살 되던 해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가 또래에 비해 발달이 느리니 하루 빨리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둘째를 임신 중이던 고유미 대표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큰아이 치료에 모든 시간과 자원을 쏟아부었다. 큰아이를 데리고 복지관의 치료실과 사설치료센터의 언어치료·감각통합치료·미술치료 교실 등을 오가는 동안 갓난쟁이 둘째는 복지관 인근 벤치와 빈 교실에서 젖을 먹고 엄마를 보채다가 품에서 잠이 들었다.
대기실에서 큰아이의 치료가 끝나길 기다리던 어느 날, 맞은 편에 앉은 엄마들의 지치고 무기력한 표정을 봤다. '내 얼굴도 똑같겠지' 생각하니 울컥하는 심정이 됐다. 작고 약한 사람들이 모여 쓸모없는 것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고, 자신과 이웃의 삶, 나아가 세상을 바꾸는 프로젝트는 작은 눈물 한 방울에서 시작됐다.
"처음부터 환경문제나 커피박(커피찌꺼기)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이전에 캘리그래피를 배운 적이 있어서, 아이들을 기다리는 시간에 엄마들끼리 캘리그래피 모임을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죠.
복지관에 빈 교실을 하나 내어달라고 부탁해서 엄마 대여섯 명이 모여 예쁜 그림을 그리고 좋은 글귀를 쓰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니 힐링이 됐어요. 집에 걸어둘 소품도 만들고 복지관에 필요한 안내판도 만들었죠. 얼마 뒤엔 복지관 측에서 아예 정규강좌를 개설하자고 하더라고요. 1년여간 부모교실을 운영했는데 반응이 좋았고, 엄마들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어요.
취미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수익이 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엄마들끼리 막 상상의 나래를 펼쳤죠. 아이와 엄마가 함께 일할 수 있는 공간, 함께 아이를 키우고 서로를 돌보는 공동체가 있다면, 모두에게 위로가 될 텐데... 그래서 2019년에 '광명시 여성창업기금 지원기금'을 신청해 지원받고, 창업 아이템을 찾던 중 커피큐브의 임병걸 대표님이 커피박을 점토로 만드는 기계를 상용화한다는 기사를 봤어요.
'아직 시판하긴 이르다'는 임 대표님을 설득해 그분이 테스트용 기계에 이어 두 번째로 만든 기계를 샀어요. 당시 창업비용이 부족해서 24개월 분할납부하겠다고 했는데도 기꺼이 기계를 내어주셨고, 다행히 6개월 만에 다 갚았어요(웃음). 그 기계로 캘리그라피를 함께하던 엄마들과 복지관 내에 작은 공간을 마련해 '위로상점'을 열고 성인 장애인을 위한 직업재활훈련도 시작했어요."
복지관 한켠서 시작한 '위로상점'... 연대생산 모델의 출발점
고유미 대표와 '엄마들' 그리고 직업재활훈련을 받는 장애인들은 힘을 모아 복지관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박을 수거해 점토로 바꾼 다음, 커피박 연필을 비롯한 다양한 생활소품을 만들어 판매했다. 광명시에 광명 경기문화창조허브가 문을 열면서 우수기업으로 선정돼 입주한 후에는 작업공간 걱정 없이 2년간 '위로상점'을 꾸릴 수 있었다.
"소셜벤처 운영자로 경험을 쌓고 관련 공부도 하고 강연도 하다 보니, 커피박을 매개로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일하는 자원순환 생태계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커피큐브 임 대표님이 회사의 기술 파트는 본인이 맡을 테니 경영 파트를 맡아 사업을 키워보지 않겠냐고 제안하셔서, 커피큐브 총괄매니저로 합류하게 됐죠.
당시 직원은 임 대표님과 저, 단 두 명이었어요(웃음). 이후 회사가 성장하면서 만 60세 이상 어르신들의 작업장인 '커피클레이'를 자회사로 두게 돼 지금은 커피클레이 대표이사를 겸임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