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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부활절 연합예배사건 변론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 22] 구속→재판→유죄→석방이 모두 "엿장수 맘대로"였다

등록 2022.11.04 16:25수정 2022.11.04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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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991년 7월 18일 한국기독교협의회 김기설씨분신사건진상조사위 박형규 위원장(오른쪽)은 회견을 갖고 일본에서 감정한 김기설씨 유서대필 관련 문서를 내보이며 강기훈씨의 필적과 김씨의 필적은 상이한 것으로 판명됐다고 밝혔다.

1991년 7월 18일 한국기독교협의회 김기설씨분신사건진상조사위 박형규 위원장(오른쪽)은 회견을 갖고 일본에서 감정한 김기설씨 유서대필 관련 문서를 내보이며 강기훈씨의 필적과 김씨의 필적은 상이한 것으로 판명됐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유신체제하에서 수도권도시선교위원회를 통해 빈민 선교에 관여하고 있던 서울제일교회 전도사 권호경은 많은 기독교인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남산 부활절연합예배를 통해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나라의 장래를 위해 기도할 수 있도록 촉구하는 기회를 마련할 계획을 세웠다.    

그는 남삼우와 함께 서울제일교회 당회장 박형규 목사의 동의 아래 구체적인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간단한 구호와 "회개하라, 때가 가까웠느니라", "회개하라 위정자여", "주여, 어리석은 왕을 불쌍히 여기소서", "국민주권 대부받아 전당포가 웬 말이냐", "주님의 날이여 어서 옵소서. 1973년도 부활주일 새벽에" 등 성서적인 표현을 중심으로, "회개하라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등의 내용이 적힌 플래카드와 전단도 제작하였다.

이들은 제작된 전단을 4월 22일 부활절연합예배 후 배포하려 했으나 경찰과의 충돌이 예상돼 계획대로 배포하지 못하였다. 단지 KSCF 회원들이 새벽 연합 예배에 참석하고 귀가하는 교인들에게 일부를 배포하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우연찮게도 전단이 당국의 손에 들어가 중앙정보부 지휘 아래 남대문경찰서에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색출 작업에 착수했다. 

서울지검 공안부 정명래 부장검사는 7월 6일 서울제일교회 목사 박형규(50)ㆍ동교회 전도사 권호경ㆍ전 신민당 조직국 제2부 차장 남삼우(35)ㆍ이종란(27) 등 4명을 내란예비음모 혐의로 구속하고, 다른 관련자 11명을 검거 조사 중이라고 발표했다.

검찰의 주장은, 박형규 등이 금년 4월부터 기독교학생연맹 내의 불평분자와 전과자들을 모아 쿠데타 행동대원 군중선동대를 조직하고, 4월 22일 부활절 예배를 거사일로 잡아 남산 야외음악당에서 열린 기도회 때 2,000여 장의 반정부 선동 삐라를 살포한 뒤 행동대원들로 하여금 4개 방향으로 시위를 유도케 하여 중앙 방송국과 중앙청을 비롯한 관공서를 점거케 할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주석 2)

한승헌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총무 김관석 목사의 요청으로 박형규의 변론을 맡았다. 기독교인 변호사가 맡기를 거부해 그가 사건을 수임하게 되고 "이것이 나와 한국 기독교계(개신교)의 첫 만남이었고, 그 후 내가 신자가 아니면서도 기독교 인권운동에 일조를 하면서 많은 기독교인들을 변호하는 계기가 되었다." (주석 3)

서울지검 공안부는 이들을 '내란예비음모' 혐의로 몰아 기소했다. 한승헌은 사건의 허구성을 파헤쳤다. 공판정에서 박형규에 대한 한 변호사의 반대신문이다. 


 문 : 기독교에서는 폭력을 사용하는가?
 답 : 안한다.
 문 : 부활절 연합예배에는 무엇을 가지고 참석하는가?
 답 : 찬송가와 성경이다.
 문 : 예배에 참석할 때 흉기를 가지고 오지는 않는가?
 답 : 그런 경우는 없다. 
 문 : 예정대로 진행되었다면 어떤 사태가 일어났을 것이라고 지금 생각하는가?
 답 : 아마 그 자리에서 (기도제목이 씌어 있는) 현수막을 잠깐 들었다가 경찰에 의해 제지당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문 : 군중들은 어떻게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답 : (기도제목이 적힌) 현수막을 보고 놀라기는 하겠으나 흩어져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주석 4)

9월 25일 선고 공판이 비공개로 열리고 3분 만에 박목사와 권전도사에게 각각 징역 2년이 선고되었다. 그런데 선고 이틀 후 보석으로 풀려나왔다. 기독교계의 강한 저항에 굴복한  것이다.


구속→재판→유죄→석방이 모두 "엿장수 맘대로"였다.


주석
2> <한국민주화운동사연표>, 240쪽, 한국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6.
3> <자서전>, 131쪽.
4> 박형규, <15년 만에 무죄 난 '내란음모'>, <실록(2)>, 46~47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한승헌 #시대의양심_한승헌평전 #한승헌변호사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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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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