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면 행복해집니다.
이은혜
집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불암산이 있다. 마음이 힘든 날이면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산으로 향했다. 불암산 입구에 들어서면 방금까지 내가 있던 곳과 같은 동네가 맞나 싶을 정도로 울창하게 큰 나무들로 빼곡한 숲길이 나온다. 나무로 잘 정비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둘레길과 산 정상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혼자 산 정상에 다녀올 자신이 없어 둘레길로 방향을 정하고 걷기 시작했다.
사람이 한적한 둘레길을 걸으며 잠시 마스크를 내리고 심호흡을 한다. 단전까지 깊게 들이마시고 입으로 내쉴 때 마음속에 담아둔 화를 뱉어낸다. 둘레길에 서서 몇 번 호흡을 하고 나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정신이 맑아진다. 높은 나무 틈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나를 위로해 주었다.
둘레길을 걷고 온 후 몸과 마음이 힐링 되는 것을 느꼈다. 둘레길 매력에 흠뻑 빠져 매일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불암산으로 향했다. 한동안 집에서 하던 운동을 쉬었더니 곰 세 마리가 어깨에 매달린 듯한 피로가 느껴졌는데 둘레길 걷기를 시작하고 달라졌다. 무기력하고 피로했던 심신에 조금씩 에너지가 채워지는 것 같았다.
"걷기는 가장 훌륭한 약이다" – 히포크라테스-
"걸으면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호르몬인 세로토닌이 증가한다"
'병의 90%는 걷기만 해도 낫는다' 중에서
둘레길을 걷는 동안 세로토닌이 증가해서일까? 마음에 긍정 에너지가 채워지고 몸도 가벼워졌다. 깨졌던 아침 루틴도 점차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또 걷다 보면 밤새 고민하던 문제의 해결책이 떠오르기도 했다. 전에도 걷기 운동은 해봤지만 지금처럼 몸과 마음이 동시에 좋아지는 것을 느끼진 못했었다.
심신의 변화를 느끼자 나도 모르게 걷기 전도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어떤 날은 친구와 어떤 날은 가족과 함께 걸었고 인스타에 걷기 인증을 하고 걷기 운동을 독려하는 글을 쓰게 되었다.
엉덩이에 힘을 빠악!
생존을 위해 시작한 운동이었는데 꾸준히 하다 보니 심신이 건강해지고 삶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켜주었다. 운동의 매력에 흠뻑 빠져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종종 수업을 들었던 필라테스 지도자 과정을 이수하게 되었다.
지도자 과정 중 올바른 걷기의 자세와 근육에 대해 배우는 시간이 있었다. 걷기의 메인 근육이 엉덩이 근육이고 걸을 때 엉덩이 근육에 힘을 주고 걸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몇 년 전 동생이 자신이 엉덩이 기억상실증(오랜 시간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엉덩이 근육과 허벅지 뒷근육을 잘 사용하지 않아 힘이 약해지고 쇠퇴하는 증상을 일컫는 말로, 대둔근·햄스트링 조절 장애라고도 한다)인 것 같다고 했다. 엉덩이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며 "언니도 확인해 봐~"라고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교육을 마치고 지하철로 걸어가는 길에 의식적으로 엉덩이에 힘을 주고 걷자 평소 걸을 때 느끼지 못한 엉덩이 근육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행히도 꾸준히 홈트를 한 덕분인지 엉덩이 기억상실증은 면했다.
일상에서 걸을 때 걸음걸이에 신경 쓰며 걷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아이들을 등교시키는 아침은 분주하고, 교문 앞까지 빠르게 걷다 보면 걸음걸이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천천히 걸을 때도 마찬가지다. 올바른 자세로 걷기 말고도 신경 쓸 일은 너무나 많았다.
본격적으로 둘레길 걷기 운동을 시작하면서 걷기 운동을 하는 1시간만이라도 엉덩이 근육에 힘을 주며 올바른 자세로 걷는 데 집중했다. 제대로 엉덩이에 힘을 주고 걸은 날은 엉덩이 근력 운동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좋은 걸 왜 안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