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바다출판사
비평가이자 회고록 작가인 비비언 고닉(1935~)은 대학을 졸업하고 저널리스트로 일했고 1971년 첫 책을 냈다. 하지만 그녀의 이름을 알린 것은 1987년 51세에 낸 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한 회고록 <사나운 애착>(Fierce Attachments)이다. 이 책은 그녀가 80대가 되어 재발행되었고 2019년 뉴욕타임스에서 최고의 회고록으로 꼽히며 재조명되었다.
올해 여든일곱인 그녀는 여전히 작업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놓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는 그의 저서가 2021년(<사나운 애착>, 글항아리)과 2022년(<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바다출판사)에 출간되었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는 결혼과 이혼, 사랑과 우정, 페미니즘, 관계와 대화, 고독과 외로움 등,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과 거기서 발생하는 감정에 대해 탐구하고 질문했던 저자의 긴 보고서다. 그는 자신과의 긴밀한 연결을 위해 내면의 바닥으로 침잠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인간이라는 이해 불가능한 존재, 그 내면의 동굴에서 포착한 어둡고 음울하며, 씁쓸하고 절망적인 벽화를 세련된 언어와 풍부한 은유로 길어 올린다.
그녀는 긴 시간 결혼과 관계, 외로움이라는 주제로 글을 써 왔다. "힘겨운 진실을 꾸준히 바라볼 때 나는 조금 더 나 자신에 가까워"(61쪽) 진다고 그녀는 말한다. "페이지들을 써 내려가고, 문장들을 늘리고, 생각들을 집어넣으면서"(74쪽) 그녀는 "구원받지는 않더라도 새로워진다고"(74쪽) 느낀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은 타인과의 교감 속에서 삶의 의미와 행복을 얻는다. 그러면서도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으로 온전하길 바란다. 그 모순적 관계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필요한 일은 '나 자신과 가까워지기'이다.
웨스트 빌리지의 임대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는 고닉은 산책가(걷는 사람)로 유명하다. 이 책에는 저자가 "걸어야 할 운명"을 발견하게 된 계기가 등장한다. 그녀는 이혼 이후 혼자 살면서 자신에게 불안과 우울이 지속적으로 찾아왔고, 그것의 이름이 외로움이라는 걸 알게 된다. 어느 날 5km 정도의 거리를 걸으면서 음울하고 탁했던 감정이 정화되는 걸 경험한 그녀는 그걸 잊지 않고자 날마다 걷기로 다짐한다.
각자의 삶에도 원치 않는 감정이나 패턴이 반복되고 있지 않은가. 비비언 고닉의 말을 따르면 "받아들일 수 없는 것"과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운명이다. 때로는 부정적인 감정을 수용하고 그것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 삶에는 필요하다.
인간에게 주어진 일생의 과제, 자신과 가까워지기
날마다 노력하는 일은 내게 일종의 연결이 되었다. 연결되는 감각이란 강해지는 느낌이었다. 강해진 나는 내가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느끼기 시작했다. 독립적인 사람이 되자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생각을 할 때 나는 덜 외로워졌다. 내게는 나 자신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나 자신이 있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60쪽)
이 책에 실린 에세이들은 비비언 고닉이 "통렬하고 심오하며 입속에서 쇠처럼 쓰디쓴 맛을 느끼면서 써낸 이야기"(128쪽)이다. 혼자이고 싶지만 연결을 갈망하고, 관계 속에서 좌절하고 절망하면서도 또다시 누군가에게 초대받길 바라는 '자기 분열의 이야기'이기에. 나와 타인, 그 사이에서 균형 감각을 잃어버리고 진흙탕에 빠지고 말았던 실패의 경험조차 그녀는 끈질기게 바라보며 그 속에 숨어 있는 구겨진 진실을 기어이 글로 꺼내 보인다.
책을 읽는 동안 그녀가 느꼈을 쇠처럼 쓰디쓴 맛이 들숨과 날숨을 따라 나의 입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관계 속에서 혼자이길, 또한 함께이길 갈망하는 모순과 자기 분열은 누구나 지니고 있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외로움에 사로잡혀 무기력해지는 대신 날마다 자신에게 말을 거는 일일 것이다. 상황과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생각을 하고 스스로가 자신을 이해해주면서, 우리는 인생의 가장 든든하고 진실된 친구를 얻을 수 있다. 나 자신이라는 믿음직한 친구를.
고닉처럼 걷는 일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거나 글쓰기를 수단으로 삼아 자신과 인간이라는 종족의 내면을 탐험해볼 수도 있다. 그렇게 자신을 알아채고 (사람들 사이에서) 나를 표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가는 것. 그게 삶을 조금 더 즐겁고 편안하게 만들 거라고 배운다. '나 자신과 가까워지기'를 살아가는 동안 해야 할 가장 길고 필수적인 과제로 받아들인다.
그분께 저는 저 자신에게 말을 거는 일이 제가 할 투쟁이 되리라는 걸 배웠습니다. (164쪽)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그녀가 들었던 말이 비비언 고닉이 글을 쓰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외면과 내면의 교류 속에 일어나는 반향을 치밀하게 탐구하며, 누구보다 깊숙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 그녀 삶이 이 책에 적혀 있다. 누군가와 가까워지기 위해 자신에게 다가가려 애쓰는 글. 한 인간이자 여성으로 자유롭게 살기 위해, 거리를 순례하고 사람들을 통과하며 자신을 만나길 멈추지 않는다. "계속 열려 있고, 유연하며, 계산적이지 않은 사람"(215쪽)이 되기 위해, 감정과 관계에 무뎌지지 않기 위해, 여든일곱의 그녀는 여전히 길을 걷고 글을 쓴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비비언 고닉 (지은이), 서제인 (옮긴이),
바다출판사, 2022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2
작은 목소리로 소소한 이야기를 합니다. 삶은 작고 작은 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요.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