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를 수사중인 경찰 특별수사본부가 지난 1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1층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 서울상황센터에서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다.
권우성
한국의 재난조사는 대형참사가 발생하면 검경이 빠르게 수사에 착수하는 것이 특징이다. 검·경은 빠른 수사로 진상조사를 마치고 형사 처벌할 책임자를 가려내는데, 여기에는 사태의 책임이 정부와 기업의 상층부로 번지지 않도록 조기 진화하는 목적도 있었다. 그러나 선진국의 재난조사는 수사와 조사를 분리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조사는 구조적이고 역사적인 원인까지 찾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2003년 미국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 폭발 사고 후 구성된 나사(NASA) 조사위원회는 기술적 문제와 나사 운영진의 관행을 지적하는 한편 백악관과 의회의 최고위 정책결정자들도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들이 "자신들 결정의 역할을 인식하고 안전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이유다.
2001년 9.11 테러 후 미 의회가 주도해 만든 9.11 조사위원회는 조사에 소극적인 행정부와 힘겨루기에서 이겨 조지 부시 대통령의 비공개 증언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공개 증언을 끌어냈다. 9.11 위원회는 조사보고서를 발간하며 서문에 "(조사의) 목표는 특정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전말을 밝히고 교훈을 얻는 것"이라고 밝혔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 후 정부·국회·민간차원 조사위원회가 구성됐는데 국회사고조사위원회가 가장 권위 있는 성과를 냈다. 국회사고조사위원회는 사고지역 주민 1명과 전문가를 위원으로 포함해 7개월간 활동하면서 간 나오토 총리와 도쿄전력 사장 등 정부와 기업의 최상위 책임자의 공개 증언을 받아냈다. 국회조사위원회는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규제포획'을 짚었는데, 규제 당국이 규제 받아야 할 기업에게 포획돼버려 기업 이익을 보호하는 정책을 펴는 현상을 뜻한다. 위원회는 규제포획으로 원자력 안전에 대한 감시·감독 기능이 붕괴되었고, 사전 대책을 세울 여러 차례 기회도 날렸다고 지적했다. 또 이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 사람만 교체한다고 사고 재발을 막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해외 재난조사 사례는 대형재난 진상조사에서 놓치면 안 될 관점을 알려준다. 대형재난에는 구조적 요인들이 있으며, 이를 역사적 맥락에서 밝혀야 책임을 공정하게 배분하고 근본적 대책을 세울 수 있다.
따라서 이태원 참사 진상조사는 과거와 달라야 한다. 참사의 직접 원인에만 집중해 현장 인력과 중간 관리자의 과실을 문책하는 것을 넘어, 어째서 예상할 수 있는 인파사고를 정부와 지자체가 전혀 대비하지 못했는지, 어째서 보고공백이 발생하고 국가 재난대응체계가 그리 허술했는지 구조적 원인까지 밝혀야 한다.
그러려면 검·경 수사에 종속된 진상조사 방식으론 어렵다. 경찰의 셀프 수사, 단선적 인과관계만 묻는 사법적 조사는 한계가 있다. 독립적인 재난조사기구를 만드는 것이 가장 좋지만, 당장 그럴 수 없다면 초당파적으로 위원을 구성해 추진하는 국회 국정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