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다큐 속 한 장면. 마을 방과후 아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행사가 있다. 단오날이면 씨름대회를 한다. 장원 경품이 무려 한우! 1학년 아이들이 생애 첫 씨름 경기를 앞두고 긴장하고 있다. 심판을 보는 교사도 진지해진다.
박홍열
우리들의 관계는 긴장감은 사라지고, 장난치며 웃고 떠들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본인의 내면을 가면으로 치장하고 애써 다른 사람인 것처럼 할 필요도 없다. 우리들은 딱딱한 책상 앞에서 만나는 관계가 아닌 방구석에서 대화를 하는 관계인 것이다.
아이들은 보잘것없는 내게 마음을 내어 준다. 때로는 말썽을 너무 피우고, 친구들과 계속 싸우고, 함부로 말하는 아이들 때문에 속상한 날도 많지만, 어느새 감정을 풀고 신나게 노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기쁜 마음이 생기는 것 같다. 이렇게 몇 년 동안 나는 아이들과 '정'이 들었나보다. 이 '정'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붙들어 놓는 것 같다. 도토리마을방과후는 통합으로 지내서, 공교육 학교처럼 1년만 보고 헤어질 수 없는 곳이다. 말 그대로, 지지고 볶는 우리 사이. 아이들이 내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논두렁 축구하러 가자!"이다. 몇 분 전에 나한테 혼났으면서 축구를 가자고 온갖 애교를 부린다. 그러면 나는 못 미더운 척 또 "애들아 짐 챙겨, 축구하러 가자. 애들 모아~"라고 말한다. 그렇게 나는 또 남자애들을 우르르 몰고 삼단공원 혹은 딸기놀이터로 나간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삼단공원으로 가는 언덕 을 수 백 번은 넘은 것 같다. 공원으로 이동하는 길에 고학년들도 어릴 적 윗 학년들에게 챙김을 받았던 것을 기억하는 것일까? 차가 오면 뒤를 돌아보며 동생들을 안전하게 인도한다.
축구 경기가 시작되면 나는 마치 감독과 심판이 된 것처럼 아주 열심히 구경한다. 옆에서 호응도 하고 어떨 때는 아이들 축구경기에 내가 더 몰입하는 것 같다. 뭔가 경기가 뜻대로 안 풀리면 옆에서 "패스 주고 뛰어야지, 1:1찬스에서는 골키퍼가 앞으로 튀어나와야지" 등 온갖 말을 다한다.
몰입도 100%. 축구를 구경하다보면 1,2학년 저학년들이 형님들 공 뺐겠다고 이리 저리 열심히 뛰는 모습을 보면 어찌나 귀여운지 모른다. 또 고학년들은 저학년들에게는 공을 살살 차고, 패스도 제법 많이 한다. 동생들이 실수를 하면 괜찮다고 다독이며 격려하는 모습에 오히려 내가 뿌듯한 감정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주에는 축구를 모두 마친 뒤 고학년들이 동생들을 잘 챙겨서 "너희들 정말 대단하고, 멋지고 착하다"라고 칭찬을 하였다.
그런데 이 말에 마냥 어린아이처럼 아이들이 "아자, 칭찬 받았다 신난다"라는 답하는 게 아닌가. 몇 년 전만에 해도 승부욕이 흐르고 넘쳐 논두렁의 판정을 인정하지 못해서 "논두렁은 빠져"라고 말하던 너희들이! 이렇게 멋진 남아들로 성장하다니 대단함을 느꼈다. 그뤠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