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TV <며느라기2...ing>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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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 노동시간은 노동시간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당신은 오늘 하루 몇 시간의 노동을 하셨습니까?"라는 질문에 대부분은 임금 노동시간만을 답한다. 하지만 돌봄 노동은 삶의 많은 시간을 차지한다. 노동자의 기본값은 당장 노동에 투입될 수 있는 깨끗하고 단정한 외양에 휴식을 통해 충분한 기운을 충전하고 적당히 위가 차 있는 상태이다.
먹고, 씻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삶을 위해 쇼핑하는 이 모든 돌봄 노동은 누군가의 노동 기본값을 위해 필요하다. 그것은 곧 누군가의 시간으로 환원된다. 대부분 여성 노동자의 시간이다. 2018년 OECD 통계를 살펴보면 여성의 무급 노동시간은 하루 227.3분인 반면 남성은 45분에 불과하다. 유급 노동시간은 남성이 421.9분으로 여성의 273.3분보다 길다. 이를 합하면 여성은 500.6분, 남성은 466.9분으로 여성의 노동시간이 33.7분 더 길다. 여성들이 시간 빈곤에 시달리는 이유다.
12월, 고용노동부는 외부 연구기관에 의뢰하여 노동시장 개편안을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현재 주 52시간으로 한정한 노동시간은 최대 69시간까지도 가능하게 된다. 하루 13.8시간. 마치 산업혁명 때로 회귀한 듯한 노동시간 계획표에 11시간 연속 휴게시간을 배치한다는 '배려'가 보인다. 하지만 노동 이후의 시간은 누군가에 의해 정의될 수 없는 오롯한 노동자만의 시간이다. 그 시간을 휴식으로만 정의하는 것 자체가 오만이고 월권이다.
지금보다 더 긴 장시간 노동은 가뜩이나 시간 빈곤에 시달리는 여성 노동자에게 큰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남성들의 장시간 노동은 여성의 돌봄 노동시간을 더 길게 만든다. 노동시장의 평균 노동시간이 길어질수록 여성 노동자들이 평균의 노동자가 될 가능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전체 노동시간이 길어지면 여성도 장시간 노동을 요구받지만 그 조건을 충족하기 어렵다. 돌봄 노동시간을 줄이기는커녕 더 늘어나는 상황에서 일과 생활의 병행은 가능하지 않게 된다. 결국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이렇게 노동시장 밖으로 밀려나게 되면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시간제 일자리뿐이다. 2021년 현재도 여성 노동자 중 시간제 노동자 비중은 26.4%에 육박한다. 네 명 중 한 명이 시간제로 일하고 있다. 성별 임금 격차는 현재보다 더욱 크게 벌어질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장시간 노동이 아니다
여기에 당연히 건강권 문제도 결부된다. 하루 대부분 시간을 노동에 바쳐야 하는 노동자의 건강상태가 좋으리라 기대할 수 없다. 만성피로 상태의 생활이 반복되면 건강에는 당연히 적신호가 켜진다. 더 많은 노동을 해야 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더 큰 위협에 놓이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된다. 안 그래도 시간 빈곤에 시달리는 여성 노동자들의 삶에 더 긴 장시간 노동을 얹으려는 정부의 계획은 여성 노동자에게 더욱 매우 위험하고 심각한 위협이다. 장시간 노동은 그야말로 여성 노동자의 삶과 노동 전체를 송두리째 파괴할 수 있다.
산업혁명 시기 노동자들은 주당 80시간 노동에 시달렸고, 평균 수명은 고작 17세였다. 21세기 한국의 노동 정책은 그때로의 회귀를 시도하고 있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산업혁명 시기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보다 나은 세상으로 나아갈 것인가의 선택 앞에서 노동시간은 핵심을 쥔 열쇠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장시간 노동이 아니다. 여성 노동자의 시간을 돌려주기 위한 정책, 모든 노동자가 시간 주권을 갖기 위한 노동시간 단축이 절실하다.
1) 한국여성노동자회, 전국여성노동조합,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노동조합총연맹 6개 단위가 함께하는 연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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