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손녀할머니 손은 주름이 많이 졌지만 세월에 마모되어 보드랍다.
김지원
아흔넷인 나의 할머니는 고집이 세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시골에 계신 것이 마음 쓰여 서울에 와서 함께 살자고 회유했으나 할머니께서는 본인의 친구와 일상이 있는 그곳을 떠나지 않으시겠다는 확고한 입장을 표명하셨다. 생각해 보면 서울에서 모시고 살겠다는 건 서울 사는 우리의 입장에서 편한 선택지였다. 할머니의 94년 인생은 전부 그곳에 있으니까.
이처럼 어디서 사는지는 한 사람의 존엄에 영향을 끼친다. 내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지, 내 인적 네트워크를 유지할 수 있는지는 곧 내가 살아가는 것이자 살아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는 지역뿐 아니라 공간 자체도 마찬가지다. 할머니 동네에는 아흔 넘은 할머니들이 많이 계신다. 금번 연휴에는 할머니 그리고 할머니 친구 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아흔 넘은 노인들의 가장 큰 두려움은 고독사와 요양원에 가는 것. 할머니들께선 요양원을 시설이라고 부르는데 자식들이 공무원과 의사인, 소위 자식 농사 잘 지었다는 아무개 할망도 결국 시설에 갔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나누는 할머니들의 목소리로 시설에 간 할망에 대한 가여운 마음과, 본인은 절대 요양원에 가지 않겠다는 의지와 내가 나를 잘 책임져야 한다는 대단한 각오들이 전해진다.
물론 도심에 있는 좋은 요양원은 생활편의를 신경 쓰고 고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주시스템처럼 되어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서비스를 누리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할머니들께서 생각하는 요양원은 존엄을 박탈당하는 "시설"일 뿐이다. 처음으로 할머니의 입장에서 요양원을 바라보았다. 내가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걸 먹지 못하고 시간표에 맞춰 식사를 해야 한다. 거동이 불편하니 내가 원할 때 바깥공기를 쐬지 못하고 시혜적인 서비스처럼 제공될 때만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일상의 대부분이 내 의지가 아닌 시스템에 맡겨지고 시설과 시스템에 갇힌 채 여생을 소진한다는 두려움. 그래서 나의 할머니는 본인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절대 요양원을 가지 않겠다고 하셨다. 우리 가족은 할머니의 뜻을 존중해 앞으로도 요양원을 고려하지 않기로 했다.
배설과 존엄
나이가 들면 밤에 화장실 가는 것이 위험한 일이 된다. 실제로 밤에 화장실에 가다가 넘어져 다치거나 사망하는 노인의 사례가 많다고 한다. 할머니와 지내는 며칠 동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나이가 들면 하룻밤에도 수차례 오줌을 누러 가야 한다. 항이뇨호르몬이 줄어들고 방광의 기능이 떨어지면서 배설을 내 맘대로 통제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노화라는 것은 신체적으로 통제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아진다는 점에서 아기와 비슷해진다.
야간뇨는 화장실 가는 횟수가 늘어나는 번거로움으로 끝나지 않는다. 야간뇨를 겪는 당사자와 그의 보호자(또는 반려자)의 수면 질을 낮춘다. 깊은 잠을 잘 수가 없고 이는 삶의 전반에 영향을 준다. 야간뇨가 있는 사람에게서 우울증이 3~6배 이상 발생한다는 연구도 있다. 그러나 야간뇨를 겪는 노인은 불편함보다 불편한 존엄의 문제에 봉착한다. 대개는 야간뇨의 대안으로 화장실까지 멀리 가지 않도록 요강을 쓰거나 이동식 변기를 사용한다. 그런데 밤새 쌓인 배설물, 그것이 인간 존엄에 위해를 가한다.
아이들도 이불에 오줌을 싸면 혼나는 두려움과 함께 창피함을 느낀다. 좀 더 커서 사회에 나가게 되면 내 배설물을 남에게 보인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은 수치다. 그런데 더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면 이 수치심을 받아들여야 하는 때가 온다. 요강 또는 이동식 변기에 본인이 밤새 축적한 오줌을 누군가가 비워준다. 타인에게 본인의 배설물을 보여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 심리적 갈등을 겪는다. 그것을 할머니와 엄마의 갈등을 통해 보았다.
할머니는 본인의 오줌통을 엄마가 비우는 게 민망하셨던지 엄마가 아침밥을 차리는 도중 몰래 오줌통을 비우러 가시다 방에 오줌을 흘리셨다. 통을 비우러 왔다가 방에 오줌이 흘린 걸 본 엄마는 앞으로는 본인이 비울테니 앞으로는 그냥 두라고 하셨고, 할머니는 본인이 하겠다고 고집을 피우셨다.
할머니를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과 본인의 존엄을 지키려는 할머니의 마음 모두가 이해가 갔다. 젊은 때는 당연하게 작동하는 신체 덕분에 알기 어렵지만 배설을 통제하기 어려워지는 순간, 세월이라는 이름 앞에 존엄을 빼앗긴다. 생리적 욕구를 통제하는 능력이 이 얼마나 존엄한 능력인가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