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11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년 외교부·국방부 연두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1월 11일 외교부·국방부 업무보고에서 '자체 핵무장'을 언급해 앞서 파장이 일었습니다. 대통령실은 "핵확산금지조약, NPT 체제를 준수한다는 대원칙에는 변함이 없다"며 "(윤 대통령의 '자체 핵무장' 언급은) 최악의 상황에서 국민을 지키겠다는 각오를 나타냈던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도 KBS <일요진단 라이브>(1월 29일)에 출연해 대통령실 해명에 동조하며 "대한민국은 무역국가로서, NPT를 위배해 보복을 당하면 경제에 큰 주름살을 갖게 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윤 대통령의 '자체 핵무장' 언급이 불러온 '핵무장담론'은 대통령실과 권영세 장관 해명으로 잠잠해지는 듯했지만, 최종현학술원이 1월 30일 '북핵 위기와 안보상황 인식'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언론은 해당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국민 상당수가 한국 독자 핵개발을 지지'하고 '북한 비핵화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관련 보도를 쏟아냈습니다. 경북도민일보 등 일부 언론은 해당 여론조사를 근거로 한국 독자 핵무장을 주장했고, 홍준표 대구시장은 관련 보도를 근거로 '한반도 핵무장'을 주장했는데요. 과연 언론은 최종현학술원이 발표한 '북핵 위기와 안보상황 인식' 여론조사 결과를 제대로 보도하고 있을까요?
오차범위 안인데… '약간 높았다' '조금 높았다' '소폭 많았다'
연합뉴스는 <국민 10명 중 7명 "한국 독자적 핵개발 지지…북 비핵화 불가">(1월 30일 오수진 기자)에서 여론조사 결과를 전하며 "미국이 한반도 유사시 핵 억지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는지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답한 비율이 51.3%로 '그렇지 않다'고 답한 비율(48.7%)보다 약간 높았다"고 보도했습니다. 51.3%와 48.7%는 2.6%포인트 차이로 오차범위 내에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요. 여론조사 결과가 오차범위 내에서 차이를 보일 경우, 이를 '차이'로 보도하는 건 지양해야 합니다.
그런데 최종현학술원 조사 결과를 전하는 어떤 보도에서도 여론조사 결과와 함께 전해야 할 '표본오차'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최종현학술원 의뢰로 조사를 진행한 한국갤럽에 1월 31일 문의한 결과, 해당 여론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입니다. 따라서 여론조사 결과 값이 오차범위 6.2%포인트를 넘어서는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면, '앞섰다', '높았다', '많았다' 등의 표현을 사용해 차이가 난다고 보도하는 건 지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연합뉴스뿐만 아니라, KBS, MBC, SBS, YTN, 동아일보, 세계일보, 조선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뉴스1, 뉴시스 등 언론 대다수가 '약간 높았다', '조금 높았다', '소폭 많았다', '차이를 보였다' 등 표현을 사용해 해당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선거여론조사보도준칙 제16조(오차범위 내 결과의 보도)는 "오차범위 안에 있을 경우 '오차범위 내에서 조금 앞섰다' 등의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해당 조항은 선거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할 때뿐만 아니라 최종현학술원 조사와 같은 사회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할 때도 지킬 필요가 있습니다.
조사기관도 방법도 다른데, 2년간 통틀어 가장 높은 수치?
한국경제는 <국민 76.6% "독자 핵개발 필요"…핵무장 여론 더 커졌다>(1월 30일 김인엽 기자)에서 "(최종현학술원) 조사에 따르면 '한반도 주변의 여러 상황을 고려했을 때, 귀하는 한국의 독자적 핵개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77.6%가 '그렇다'고 답했다"며 "한국갤럽이 2017년 9월 발표한 '핵무기 보유 주장' 여론조사 당시 집계된 60%의 찬성여론보다 17%포인트 높은 수치"라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최종현학술원 조사결과와 한국갤럽 2017년 9월 여론조사 결과를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최종현학술원 조사는 최종현학술원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 대상 1 대 1 면접 조사방식으로 11월 28일부터 12월 16일까지 19일간 진행했습니다. 조사단위 대표성을 높이기 위해 인구주택총조사를 바탕으로 가구를 추출한 후 가구원을 추출했으며, 연령·성·학력·직종·정치성향까지 고려해 직접 가구를 방문하는 방식으로 조사했는데요. 한국갤럽 자체 정례조사인 2017년 9월 여론조사는 만 19세 이상 남녀 1,004명을 전화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2017년 9월 5일부터 7일까지 3일간 진행했습니다. 조사단위 대표성을 높이기 위해 무작위 발생한 휴대전화번호를 기본 표본추출틀로 했으며, 휴대전화만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고연령대 일부는 무작위 발생한 집전화번호 조사로 보완했고 반영비율은 15% 내외입니다.
선거여론조사보도준칙 제17조(조사 결과의 비교)는 "서로 다른 지점에서 실시된 여론조사는 그 조사방법이 동일한 경우에만 상호비교가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최종현학술원 조사와 한국갤럽 2017년 9월 조사는 조사시점이 서로 다릅니다. 따라서 상호비교를 위해서는 조사방법이 동일해야 하지만, 두 조사의 방법은 확연히 다릅니다. 한국경제는 이런 사실을 무시한 채 두 조사를 비교한 뒤 2017년 조사에 비해 한국 독자 핵무장에 찬성하는 응답자가 17%포인트 늘어났다고 보도한 것입니다.
(※ 한국경제 <국민 76.6% "독자 핵개발 필요"…핵무장 여론 더 커졌다>(1월 30일 김인엽 기자)에서 인용한 여론조사 개요 : ① 조사의뢰자 : 최종현학술원 / 여론조사기관 : 한국갤럽 / 조사일시 : 2022년 11월28일~12월 16일(19일간) / 조사대상 :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 / 표본 추출 : 다단계 층화 계통 추출법(Multi-Stage Stratified Systematic Sampling) / 조사방법 : 개별면접조사(Face to Face Interview) / 표본오차 : 95% 신뢰수준 ±3.1%p / ② 조사의뢰자 : 한국갤럽 자체조사 / 여론조사기관 : 한국갤럽 / 조사일시 : 2017년 9월 5일~7일(3일간) / 조사대상 :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4명 / 표본 추출 : 휴대전화 RDD 표본 프레임에서 무작위 추출(집전화 RDD 15% 포함) / 표본오차 : 95% 신뢰수준 ±3.1%p / 그 밖의 사항은 한국갤럽 <데일리 오피니언 제275호(2017년 9월 1주)> 보고서 참조)
최종현학술원 발표 받아쓴 동아·서울·한경·파이낸셜
조사방법이 다른 여론조사를 최종현학술원 조사와 비교한 언론은 한국경제뿐만이 아닙니다. 파이낸셜뉴스도 같은 보도를 냈으며, 서울신문은 아산정책연구원이 지난해 5월 진행한 조사를 언급하며 "이번 조사 결과는 핵무장 필요성을 물은 유사한 여론조사 결과와 비교해도 높은 수치"라고 보도했습니다. 동아일보도 미국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CCGA) 여론조사 결과를 언급하며 "최종현학술원 조사결과는 최근 2년간 한미 연구기관 여론조사를 통틀어 가장 높은 수치"라고 보도했는데요. 동아일보, 서울신문, 한국경제, 파이낸셜뉴스가 최종현학술원 조사와 조사방법이 다른 여론조사를 비교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순히 여론조사보도 기본원칙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했기 때문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