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 넓어보였던 테니스 코트장내 실력과 별개로 예전만큼 테니스 코트가 넓어보이지는 않는다.
김지은
처음에는 느린 공도 받아치기가 어렵더니 30분쯤 지나자 몸이 풀렸는지 공이 라켓에 맞기 시작했다. 공이 네트를 왔다 갔다 하는 횟수가 는다. 공이 땅에 한 번 튄 후에 바로 쳐야 하는데 정식 게임이 아니니 공이 땅에 두세 번 튀어도 포기하지 않고 공을 라켓으로 떠 넘긴다.
레슨 시간에 배운 좋은 자세를 다 잊고 공을 쳐내기 바쁘다. 그런데 어떤 한 순간, 공이 조금 천천히 나에게 온다고 느껴질 때, 친구가 말한 문장이 아닌 선생님이 나에게 해주신 문장들이 떠오른다.
"공에 너무 달려들지 말아요."
"팔을 쭉 뻗어서 스윙하세요."
"공이 바운드되기 전에 발을 멈추세요."
이런 말들. 그럼 난 그 말이 내 몸에 스밀 수 있게 자세를 가다듬는다. 비록 열 번에 한 번, 스무 번에 한 번이지만. 그렇게 치다가 순간, 신기한 걸 깨달았다.
1년 전 이곳에서 테니스를 칠 때는 코트가 너무 넓어 보였다. 내가 친 공은 번번이 네트에 걸려 넘어가질 못했다. 그런데 이번엔 코트가 넓어 보이지 않는다. 내 공이 다 네트를 넘긴 건 아니지만 혹여 네트에 걸렸더라도 테니스 코트가 넓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 것이다.
'오, 내가 실력이 늘었다는 것인가.'
어렸을 때 살던 동네에 오랜만에 가면 크다고 생각했던 놀이터나 공터가 생각보다 작아 깜짝 놀란다. 한번 작아보이면 그걸로 끝이다. 다시 커보일 수가 없는 것이다. 테니스 코트, 넌 끝이야. 넌 내게 다시 커보일 수 없지.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먼저 말해주지 않아 내가 스스로 말했다.
"나 늘었지? 그치?"
"응, 늘었네."
"다른 사람에 비해 천천히 느는 것일뿐 몸치라고 아예 안 느는 건 아니야."
남편은 내 말을 들은 건지 못 들은 건지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괜찮다. 이건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주어진 상황을 탓하며 쉽게 포기하지 말자고 말이다. 그게 뭐든.
소심하지만 반전인생을 살고 있는 혹은 반전인생을 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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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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