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 출석해 있다.
남소연
갑자기 1년 전의 씁쓸했던 기억이 떠오른 건, 국회의원에 대한 불체포 특권 관련 기사가 연일 모든 언론을 도배하고 있어서다. 야당 대표를 겨냥한 체포동의안의 가결과 부결을 놓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여야 모두 정치적 이해타산에 매몰되어 민생 문제는 내팽개친 채 블랙홀처럼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형국이다.
여당은 '방탄 국회'라고 비난하고, 야당은 '정치 보복'이라고 맞서며 극한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갈등의 골이 워낙 깊어 야당 대표 체포동의안의 가결 여부와 상관없이 국회의 정상화는 당분간 난망한 상황이다. 극단적으로 갈린 여론까지 가세하며 '치킨 게임'을 방불케 한다.
그런데, 여야가 더 세게 치받을수록 불체포 특권에 대한 여론의 맹목적인 반감이 높아지고 있는 듯하다. 국민 다수가 헌법상 불체포 특권을 범죄를 저지른 국회의원을 보호하기 위한 방패막이쯤으로 여기고 있다. 야당 내부에서조차 당당히 수사를 받으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불체포 특권은 '적폐'로 취급받는 모양새다.
선거제도 개혁에는 국민 대다수가 찬성하지만,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는 데 대해선 반대의 목소리가 압도적인 것도 불체포 특권을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여야의 상호 비방과 사생결단식 갈등이 정치 혐오를 부추기면서, 국민의 대표자로서 국회의원의 권능을 스스로 허물고 있다. 불체포 특권은 이미 바람 앞에 촛불 신세다.
불체포 특권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 조항과 닮았다. 호명되는 이름의 맨 뒤에 각각 권리와 의무를 달고 있지만, 둘 다 외압을 차단하기 위해 제정된 법적 장치라는 점에서다.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은 정권의 부당한 권력 행사에 맞서 자율적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제도화됐다.
우리나라에선 1948년 제헌 헌법 제49조에 처음 규정된 이후 아홉 차례나 헌법이 개정됐지만 불체포 특권은 손대지 않았다. 1960년 내각제로의 개헌 이후 국회에서 체포동의안과 석방 요구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이 추가됐을 따름이다. 국회가 '통법부'라고 조롱받던 유신 정권에서조차 삼권분립이라는 대원칙에 부합하는 권리임을 인정한 셈이다.
제헌 헌법과 함께 시작된 대의민주주의를 위한 헌법상 권리가 동네북 신세로 전락한 건 정치인들이 자초한 일이다. 물론, 정치인 개개인에게 해될 건 없었다. 국민의 정치 혐오가 심해질수록 선거판은 지역감정에 기댄 양당 토호들의 '놀이터'로 전락해갔다. 오죽하면 정경유착의 한 축인 재벌까지 나서서 '경제는 이류, 정치는 삼류'라고 조롱했을까.
안타깝지만, 이마저도 닮았다. 정치 혐오가 불체포 특권이라는 국회의원의 헌법상 권리를 만신창이로 만들었듯, 우리 교육에 대한 불신이 보장받아야 할 교사의 '권리'였던 교육의 정치적 중립 규정을 지켜야 할 '의무'인 양 오해하도록 했다. 그 결과, 가타부타 군소리 말고 정부가 하달한 지침을 충실히 이행하는 '파블로프의 개'가 되면 교사가 훈장을 받는 시대가 됐다.
교육청에 소명서를 제출하면서 정작 참담했던 건 따로 있다. "무탈하게 정년퇴직하려면 입 닫고 귀 막은 채 지내는 게 상수"라던 동료 교사들의 움츠린 모습이다. 교사의 교육 행위를 사사건건 옥좨온 교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 조항의 '목적'이 정권의 바람대로 실현되고 있음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정작 달은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쳐다보는 형국이다. 불체포 특권이든, 정치적 중립 의무 조항이든, 법 제정의 근본적인 취지는 온데간데없고 맹목적인 불신과 혐오만 난무하고 있다. 하긴 노조에 대한 반감을 부추겨 헌법상 권리인 노동삼권마저 부정하는 현 정권의 비정함과 강퍅함을 보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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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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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체포 특권이 '적폐'라니, 달 안 보고 손가락만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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