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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된 첫 풋살대회 "왜 하필 지금이냐고!"

코로나 탓에 집 안에 고립됐던 일주일... 내가 외롭지 않았던 이유

등록 2023.03.15 10:11수정 2023.03.15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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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단 한 번도 공을 만져본 일 없던 여성이 축구를 시작했습니다. 축구하면서 접한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함께하면 이렇게 따뜻하고 재밌다고, 당신도 같이 하자고요. [기자말]
내가 속한 팀이 아마추어 풋살대회에 출전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합 규정상 스무 명 가까운 인원 가운데 절반 정도만 함께할 수 있었다. 나는 친선 경기 경험조차 몇 없지만 한 번 참여해보기로 했다.

최근에 경기를 뛰면서 느꼈는데, 나는 우리 팀 친구들과 게임할 때 좀 더 심하게 주눅 드는 타입이었다. 친구들 이겨서 뭐 해. 내게는 승리보다 내 친구들이 안 다치는 게 더 중요하다. 그래서 자꾸만 몸싸움을 피했고, 상대적으로 덜 진지해졌다. 이겨야 하는 상대가 분명할 때는 훨씬 마음이 반듯해졌다.


'그래, 대회라는 거, 처음이라 두렵지만 일단 한번 나가보자. 거기에는 적(?)도 수백 명쯤일 테니 긴장도 훨씬 많이 되겠지? 내 몫을 잘해야 할 텐데. 친구들에게 폐만 안 끼치면 좋겠다.'
 
풋살화 샀다 운동은 장비발이다.
풋살화 샀다운동은 장비발이다.이지은

"언니, 의지로 열 내린 거 아냐?" 

문제는 하필 시합 나흘 전에 몸 상태가 순식간에 안 좋아졌다는 사실이다. 밤새 고열에 시달리고 오한이 들어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이불 속에서 끙끙 앓으면서 한 가지 생각만 했다.

"아... 나 대회 나가야 하는데 어쩌지? 주말 전에는 낫겠지?"

다음 날 아침, 올라가지 않는 눈꺼풀을 겨우겨우 들어 올렸다. 마음 같아서는 상사에게 연락해 '몸이 아파서 오늘 쉬겠습니다' 말하고 싶었지만, 인생의 유일한 교훈이 '성실'인 나는 그 몸을 이끌고 기어이 회사에 나갔다.

회사가 집에서 30여 킬로미터 떨어져 있어 자차로 1시간쯤 이동하는데, 운전하는 내내 "아, 차 버려버리고 갓길에서 쉬고 싶다. 그냥 이대로 누워버리고 싶다"라고 중얼거렸다. 그렇게 기진맥진한 몸으로 출근하자마자 회사 동료인 연남도령에게 몸 상태를 공유했더니 그가 바로 대꾸했다.


"코로나 아니에요?"
"에이, 아니에요. 그냥 몸살이야. 왜냐하면 나 주말에 풋살 대회 나가야 되거든요? 그러니까 코로나일 리가 없어요."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예요... 코로나 자가 키트로 빨리 검사해보세요."


연남도령의 성화에 화장실로 달려가 코를 찔러봤는데, 미세한 두 줄이 보였다. 줄이 선명하면 깨끗하게 포기가 됐을 텐데, 아니라고 우기면 인정받을 정도로 미세했다(심지어 보건소 담당자조차 '이거 좀 애매한데요'라고 말할 정도였다). 회사 사람들에게 역시 감기 몸살 같다고 했다가 '잔말 말고 당장 집으로 돌아가라'며 회사 밖으로 쫓겨났다.


아, 나 진짜 코로나 아닌데. 즉시 결과가 나오는 병원의 신속항원검사는 검사받자마자 다시 출근해야 할 테니 보건소로 향했다. 정말이지 또 출근할 기운은 없었다. 보건소 검사 나올 때까지 조금만 더 쉬자. 쉬면 나아질 거야. 나는 감기에 걸린 거니까.

집으로 돌아와 누워 있었더니 열이 떨어졌다. 팀 친구들에게 코로나 걸리면 열 안 내리지 않냐, 나 역시 코로나 아니라는 말을 반복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언니 지금 대회 나가고 싶어서 의지로 열 내린 거 아냐?"
 
풋살장에서 경기하는 사람들 대관 순서 기다리며 한 컷.
풋살장에서 경기하는 사람들대관 순서 기다리며 한 컷.이지은

웬걸. 친구들 말이 맞았다. 열은 두어 시간 뒤에 다시 마구 올랐고, 그날도 오한 때문에 쉽게 잠들지 못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받은 보건소 문자에는 '코로나 양성'이 적혀 있었다.

'이럴 리가 없어! 왜 하필 지금이야! 내 첫 대회는 어떡하라고!'

혼자 내적 울음을 토해내다가 포기하고 친구들에게 우울한 소식을 전했는데, 곧 주장 황소에게 문자가 왔다.

"이번에 언니가 활약할 것 같아서 엄청 기대했는데 아쉽다. 언니, 내가 약 타다 줄까?"

주변의 안부를 물으며 살아내는 하루

황소가 다녀간 집 앞 현관에는 코로나 약뿐 아니라 각종 인스턴트 죽과 햇반, 과일 등이 한가득 놓여 있었다. 뭘 이렇게 잔뜩 사놨냐고 물품 구매 비용은 얼마 들었냐고 묻는 내게 그는 "괜찮아, 힘들 때 서로 돕고 사는 거지"라는 말로 대신했다.

이후로 팀의 다른 친구에게서는 밥 잘 챙겨 먹으라며 죽 선물이 도착했고, 기어코 출근한 나 때문에 전 직원이 코로나 검사를 받는 등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간 회사 내 동료들은 내가 밉지도 않은지, 빨리 나으라며 각종 과일과 죽 등을 보내주었다(몇 개월 전 일이라 지금 상황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지만, 어쨋든 코로나 의심 들면 잔말 말고 신속하게 검사받읍시다).
 
황소가 사다준 코로나 비상식량 코로나 덕에 친구들의 다정을 얻었다.
황소가 사다준 코로나 비상식량코로나 덕에 친구들의 다정을 얻었다.이지은

하나의 상실은 다른 하나를 획득할 기회다. 비록 내 첫 대회 경험은 놓쳤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것들을 얻었다. 코로나는 나를 풋살대회에 못 나가게 만들고 일주일간 집 안에 고립시켰지만, 내 주변 사람들은 '우리는 연결된 존재'임을 알려주었다.

축구 친구들과 대회에서 함께 뛰겠다는 의지 하나로 잠깐이나마 고열을 잠재운 나도, 지나가는 길도 아닌데 굳이 약과 비상식량을 구비해 전해준 친구 황소도,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지만 내 걱정에 각종 선물을 보내준 축구 친구와 회사 동료들도, 서로가 있어 그 순간을 견뎌내었다. 이렇게 우리는 이렇게 주변의 안부를 물으며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다.

물론 첫 대회를 놓친 건 많이 아쉽다. 하지만 축구 인생은 기니까, 다음번에는 꼭 건강한 모습으로 대회에 함께해야지. 더는 아프지 말고 근근이 내 주변 동료들과 축구 인생을 이어가야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다짐한 날이었다.
#코로나 #풋살 #여자축구 #생활체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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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노동자. 두 권의 책을 낸 작가. 여성 아마추어 풋살선수. 나이 든 고양이 웅이와 함께 살고 있으며, 풋살 신동이 되고 싶습니다. <편집자의 마음>, <들어 봐, 우릴 위해 만든 노래야> 두 권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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