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시대
그는 왜 어부가 되었나
"요즘은 물메기철은 끝난 셈이고 털게가 나와요. 그런데 어획량이 예전만 못합니다."
귀향해 어부가 된 지 6년이 넘은 젊은 어부 정현진씨는 요즘 어획량이 2-3년 전에 비해 많이 줄었다고 한다. 잠시간 그가 생각하는 어업의 문제점들에 대해 들었다. 수온이 높아졌다 거나 어업 보상과 관련된 문제, 위판장과 중매인의 역할과 같은 이야기들은 7년 전에는 알 수 없었던 것들이다.
어업을 선택하고 나서 지금의 삶은 어떨까. 머구리 아버지를 보고 자란 정씨에게 어업은 생소한 일은 아니었다. 큰 수술로 아버지의 어업을 도와줄 수 없게 된 어머니를 위해 두어 달만 배를 타려 했던 정씨가 한 해를 넘기고 2년, 3년을 배에서 내리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다. 아버지가 혼자 배에 오를까 봐 서였다.
그간 서울의 주거를 정리하지 못하다 3년째 되는 해에 차라리 어부가 되자고 결심하고 모두 정리해 남해로 돌아왔다고 한다. 어업 방식 때문에 처음엔 아버지와 갈등도 있었지만 지금은 부자가 사이좋게 남면 바다에 함께 그물을 던지고 함께 배를 오르내린다.
지금 안 하면 언제 해?
소위 `도시물`을 마시다 귀향해와 고향이 답답했을 법도 한데 아내 박현애 씨와 보내는 고향생활은 생각보다 재밌어 보였다. 부부는 군민 극단 하모하모의 단원이다.
정현진씨는 지난해 남해문화재 야행의 뮤지컬 <김만중>에서 김만중의 아버지 김익경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부부는 극단 하모하모가 계획 중인 또다른 연극의 배역을 위해 매주 연습을 시작했다고 한다.
피아노, 바이올린 등의 강사로 활동하던 아내 박현애씨는 싹싹하고 밝은 성격에 `지금 안 하면 언제해?"라는 소신을 가진 정씨와 죽이 잘 맞아 이것 저것 새로운 것을 계속 도전하고 있었다.
남해대학 가게 된 이유
정씨가 남해로 돌아와 어부로서 살아가면서 느낀 점은 주위에 비슷한 나이 또래가 눈에 띄게 줄었다는 것과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살아가기 참 힘들겠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어업을 생업으로 생각하고 들어온 사람들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나가는 현실을 보건대 앞으로 10년 후 이 바다에 과연 사람들이 얼마나 남아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한 것.
그가 남해대학에 입학하게 된 것은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하는 고향사람들, 귀촌인들과 교류를 가지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유연한 마음으로 생각을 나누고 노인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젊은 사람들로 인해 생기는 변화를 중재하는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함께 잘 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