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녹지 않은 현장영하의 기온이 지속되어 현장에 쌓인 눈이 녹지 않고 있다.
길한샘
저는 건설현장에서 2년 가까이 일한 형틀목수입니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추웠습니다. 대부분은 영하 10도 안팎의 날씨였지만, 때로는 영하 20도까지 떨어졌습니다. 핫팩과 고체연료를 가까이 해도 손과 발이 떨렸습니다. 그래도 따스한 봄날을 기다리며 망치를 놓지 않았습니다.
추위가 모두 가고 봄이 왔지만, 제가 일할 건설현장은 없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건설노조를 '건폭(건설현장 폭력행위)'으로 규정한 후, 제가 아는 모든 현장이 노조와의 교섭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건설현장을 개선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건설사의 입장을 대변할 뿐, 건설노동자의 목소리를 들을 방안조차 마련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가 말한 개선에 건설노동자의 삶은 없는 걸까요?
법과 원칙에 따라 발생하는 빈번한 실업과 저임금
건설노동자에게 실업은 빈번한 일입니다. 이는 건설업의 특수성에서 비롯됩니다. 건설업은 '수주산업'에 해당됩니다. 수주산업은 주문이 생겼을 때 상품을 생산하는 구조입니다. 이로 인해 기업은 주문량에 따라 노동자를 고용하길 원합니다.
건설업의 특수성 중 다른 하나는 '발주처 -> 원도급사(종합건설업체) -> 하도급사(전문건설업체) -> 건설노동자'로 이어지는 고용구조입니다. 아래로 갈수록 공사비용이 줄기 때문에 건설노동자의 임금도 낮아집니다.
건설업의 특수성은 기업에게 많은 이윤을 남기지만, 건설노동자에게 빈번한 실업과 저임금을 초래합니다. 게다가 건설노동자는 일용직과 포괄임금제에 묶여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유급휴일'인 연차휴가, 주휴일, 법정공휴일, 노동절 등도 누리지 못합니다.
하지만 건설현장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앞선 이야기는 정부가 유독 강조하는 '법과 원칙'에 따를 경우에만 해당됩니다. 제가 건설노동자로서 듣고 몸소 겪은 현실은 법과 무관했습니다.
불법이 판치는 건설현장, 진짜 건폭은 누구인가
건설업의 고용현실은 '발주처 -> 원도급사(종합건설업체) -> 하도급사(전문건설업체) ->
도급팀 -> (직업소개소) -> 건설노동자'로 이어집니다. 건설업은 건설산업기본법 제29조에 따라 재하도급을, 파견법 제5조 제3항 제1호에 따라 파견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건설현장은 '불법 재하도급'인 도급팀과 직업소개소의 '불법 파견'이 횡행합니다. 정부는 불법을 단속하겠다고 하지만, 하도급사(전문건설업체)와 불법의 당사자 간 이면 계약을 증명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불법 다단계 하도급'의 문제는 건설노동자의 임금이 낮아지는 걸로 끝나지 않습니다. 다단계 하도급의 아래에 있는 사업주는 이윤을 위해 건설노동자에게 '공사기간 단축'을 강요합니다. 이때 건설사는 공사비용과 기간이 단축되기 때문에 불법을 묵인합니다.
건설노조의 채용 요구가 채용 강요인가
보통 건설노동자는 불법인 도급팀에서 일합니다. 팀장은 일용직인 건설노동자를 맘대로 해고할 수 있습니다. 건설노동자는 해고가 두려워 팀장의 무리한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임금에서 일부를 임의로 떼어가도, 잔업을 하고 연장근로수당을 주지 않아도, 휴일 없이 일을 해도, 임금체불이 발생해도, 위험한 작업을 해도, 산업재해를 당해도 섣불리 따질 수 없습니다. 이것이 건설노동자의 처우가 열악한 이유입니다.
사실 불법 재하도급을 막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하도급사(전문건설업체)가 건설노동자를 '직고용'하는 겁니다. 그런데 건설노동자 개인이 이를 요구하긴 어렵기 때문에, '건설노조'는 철근콘크리트협의회와 단체협약을 하고 조합원의 직고용을 요구했습니다.
일단 현장이 개설되면, 건설노조는 하도급사와 교섭을 시작합니다. 혹여 교섭이 결렬되면, 항의하는 집회를 열기도 합니다. 이는 통상적인 노사 교섭 과정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상시고용을 하지 않는 건설업의 특성상 채용을 요구한다는 점입니다.
튼튼한 건물을 짓기 위한 조건, 안전한 노동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