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의 기원> 영문판 표지와 일월서각 번역본 표지.<한국전쟁의 기원> 영문판 표지와 일월서각 번역본 표지.
조성일
1979년 10.26사태 이후의 이른바 '서울의 봄'은 짧은 기간이었지만 박정희 정권 18년 동안 짓눌려 있던 언론·출판이 기지개를 펴는 순간이었다. 장기독재에 눌려 사장되었던 여러 종류의 출판물이 간행되거나 출판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곧 5.17사태가 발생했고, 정국은 다시 경직체제로 이어졌다.
1980년 7월 31일 전두환 정부는 '사회정화'의 이름으로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 <씨알의 소리> 등 총 172종의 정기간행물 등록을 취소했다. 언론기관의 통폐합과 언론인, 지식인, 문학인들의 구속사태도 발생했다. 연말에는 언론기본법이 제정되어 언론규제의 새로운 작업이 행해졌다.
제5공화국 정부는 정권탄생의 과정에서 이처럼 언론·출판을 제도적으로 규제하고 '정비'하는 조치를 단행하였다. 때문에 출판계는 크게 위축되어 현상유지에 급급한 상태였다. 그러나 정권이 비교적 안정기에 접어들고 사회 각 부분의 자율화조치를 시책으로 내걸면서부터 지금까지 크게 규제해 왔던 금서들을 해금시키는 유연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정부는 1982년 2월 22일을 기해 칼 마르크스의 생애에 관한 연구서적을 비롯하여 이념서나 연구비판서에 대한 출판완화 조치를 취했다. 정부의 이런 완화조치에 따라 각종 이념서적이 제철을 만난 듯 쏟아져 나오고 일부 해금서적은 베스트셀러의 명단에 오르기까지 하였다. 출판계는 모처럼의 활기를 보였으며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1985년 2.11 총선 후 정국은 다시 경직되고 여야의 격렬한 대립과 정국불안에 따라 정부에서는 이해 5월초에 이념서적과 각종 유인물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압수에 나섰다. 정부는 이념서적들이 "학문연구만이 아닌 일부 운동세력권의 이론도출"로 인식하고, 일제단속에 나서 대학가의 서점, 출판사, 복사집 등에 대한 압수수색 작업을 벌였다. 이같은 조치는 일부 출판사 및 사회단체에서 발간되는 문제서적과 유인물 등이 대학가 서점을 중심으로 유통되거나 대량 복사되어 대학생들에게 좌경 및 불온사상을 고취시키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상황에서 김자동은 1986년 초 어느 날 일월서각의 사주 김승균으로부터 책 한 권을 받았다.
두 번째 번역거리로 받은 책이 시카고대 석좌교수 브루스 커밍스가 쓴 <한국전쟁의 기원(The Origins of the Korean War)>이었다. 책을 받아서 내용을 대략 훑어보니 '내 손 으로 꼭 번역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전쟁이라면 나와도 무관하지 않다.
전쟁 중에 아버지는 납북되었고, 어머니는 부역죄로 감옥살이를 했다. 나 역시 전쟁 세 해 동안 생계를 위해 미군부대에서 통역을 하며 종살이 아닌 종살이를 했다. 다니던 대학도 중단해야 했으며, 친척들도 남북으로 흩어지거나 더러는 목숨을 잃기도 했다. 모든 전쟁이 다 그렇겠지만 한국전쟁은 세계사의 그 어떤 전쟁보다도 참혹하고 피해도 컸다. (주석 3)
주석
3> 앞의 책, 428~4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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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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