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터널대구 송해공원 입구 벚꽃이 만개했다.
김보영
예상보다 절정으로 피어있는 벚꽃에 탄성이 나왔다. 길 양쪽으로 꽤 굵은 나무들이 벚꽃 터널을 이루고 있는 모습에 쌍계사 벚꽃길이 떠올랐다. 나는 어릴 적에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며 살아서 지역 곳곳의 벚꽃 풍경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진해 군항제의 인산인해, 자동차 거북이길인 하동 쌍계사 벚꽃길, 대전의 동학사길과 테미공원 벚꽃 등 각각의 특징이 사진 찍듯 기억되어 있다. 여기에 대구의 송해공원 벚꽃길이 하나 추가 되었다.
코로나19가 처음 발생했던 2020년에는 그야말로 벚꽃이 실종되었다. 현실에서의 실종이 아니라, 현실에는 버젓이 피어 있는데 나에게 닿지 않아서 '실종'이다. 코로나에 대한 공포에, 집 밖에 나가면 큰일 나는 줄 알고 두문불출하던 시기였으니 말이다.
그다음 해인 2021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백신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고, 아이들도 일주일에 2, 3번 정도만 등교하며 조심할 때여서 벚꽃 구경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렇게 2년의 벚꽃 공백을 겪고 3년째였던 작년에는, 그렇게 조심했던 코로나와 치열하게 싸우는 봄을 맞이했다. 큰 아이가 열이 나기 시작하더니 코로나 확진을 받았고, 조심한다고 조심하였으나 큰 아이의 자가격리 기간이 끝나던 날에 둘째 녀석이 열이 나기 시작했다.
가족 확진을 이유로 남편까지 재택근무를 하게 되어서, 2주를 두 아이 격리 수발, 온 가족 단체 감금으로 지냈으니, 바깥 세상에 봄이 오고 있는지, 벚꽃 시즌이 오고 있는지 살필 겨를이 있었겠는가.
2주의 격리가 끝나던 날, 2주 만의 외출에서 드디어 2년의 공백을 지나온 벚꽃이 내게로 흩날렸다. 격리해제된 아이의 일정이 있어 청주 무심천으로 외출을 나섰는데, 우리 가족이 치열하게 코로나와 싸우던 사이 벚꽃은 이미 흐드러지게 흩날리고 있었던 것이다.
2주간 격리 후 만난, 2년 만의 벚꽃을 떠올려보라. 코로나19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시기였지만, 백신 접종이 많이 이루어져 있어서 사람들의 공포는 꽤 사그라든 분위기였다.
삼삼오오 벚꽃 구경하는 사람들 역시 2년 만에 여유로운 마음으로 저마다의 벚꽃을 즐기고 있겠지만, 1주도 아닌 2주 격리해제된 날 꽃구경을 하고 있는 나만 하겠는가. 아직 마스크로 봄 숨결은 차단당했지만, 세상 다 가진 듯한 해방감과 강제 실종됐던 벚꽃과의 재회가 내 마음을 야들야들하게 풀어놓았다.
2주간의 돌봄 노동과 스트레스가 일시에 사라지는 희열감, 그것이 2022년의 나의 벚꽃이었다. 그 하루를 벅차게 즐긴 후 다음날부터는 나와 남편에게도 찾아온 코로나 때문에 일일천하로 끝났지만 말이다.
올해의 벚꽃은 코로나와 마스크에서 해방된 벚꽃이다. 이제 공식적으로 대중교통에서의 마스크 착용 의무도 해제되었으니, 길고 길었던 코로나의 터널에서 나온 것이 실감이 난다.
벚꽃 터널을 혼자 걷고 있는 나와는 달리 내 나이 또래의 세 여자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 셀카를 찍느라 한 사람이 팔을 쭉 뻗고 이리저리 각도를 재고 있길래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제가 찍어드릴까요?" 흔쾌히 감사를 표하며 자세를 잡는 세 사람에게 말했다. "마스크 벗고 찍으시면 어때요?" 마스크로 가려진 얼굴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아온 3년이란 시간 때문에, 세 여자는 그제야 깨달은 듯 얼른 마스크를 벗었다.
내가 먼저 다가가 마스크 벗은 사진을 찍어주고 난 뿌듯함에 혼자 걷는 길이 조금 더 즐거워졌다. 호젓하게 책 읽을 벤치를 떠올리던 것이 무색하게도 벚꽃 길을 쿵쿵 울려대는 품바 음악이 아까부터 내 얼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지만, 그것 역시 코로나 터널을 지나온 우리가 누릴 수 있는 2023년의 풍경이라고 생각하니 텀블러의 식어가는 커피도 아깝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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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에서 대구로 이주해온 두 딸을 키우는 주부입니다. 뜨개를 즐기며 느끼는 소소한 일상을 글뜨개로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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