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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하와이로 시집 간 소녀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책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읽고

등록 2023.03.29 10:44수정 2023.03.29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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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읽고  책을 읽고 구절 구절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을 손글씨로 적어 보았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읽고 책을 읽고 구절 구절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을 손글씨로 적어 보았다. 손선희

'엄마'라고 부르면 나도 모르게 울컥하게 된다. 이런 감정은 그 색깔과 농도가 조금씩 다르겠지만 모두에게 있다. 아마도 50대 여자가 절정이 아닐까 한다. 빈둥지증후군과 갱년기가 함께 오는 50대라서 감정기복이 심한 탓도 있을 것이다. 물론, 어머니를 일찍 여의거나 최근에 작별한 분은 그 강도가 더 하리라.

엄마에게 넘치도록 보살핌을 받고, 투정을 부렸던 나는 이제야 '엄마의 삶이 어떠했을까?' 헤아린다. 비록 엄마가 걸쳤던 외투 한자락도 들추지 못하지만. <알로하, 나의 엄마들>이 나에게 10여 년 전 급하게 그리 가버린 엄마를 더없이 생각나게 한다. '엄마'라고 조용히 불러본다.


여성이 공부를 한다는 것 

엄마는 엄마가 되기 전에 여자였다. 물론, 아빠도 아빠가 되기 전에 남자였다. 여자와 남자로, 성인이 되기 전에 소녀와 소년으로 자신이 어른이 되는 모습을 그려보기도 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꿈꾸던 때가 있었다. 두 인연이 만나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서로의 역할이 정해지는 부분이 있었다. 아빠는 사회생활을 하는 가장의 역할을 맡고 엄마는 집 안에서 자녀 교육과 가정 살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빠의 경제력이 시원찮은 경우 엄마가 두 영역의 일을 거뜬히 해내는 삶을 살았다. 우리의 엄마들이 그러했다.

여자가 글을 마음대로 배우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외출을 하는 것도 학교를 다니는 것도 쉽지 않았다. 불과 100여 년 전 이야기다. 물론, 그 이전에도 그러했지만. 1917년 어진말에 사는 17살 버들이는 사진신부가 되어 포와(하와이)로 시집을 간다. 서로의 사진 한 장을 주고 받고 그 먼길을 떠난다. 버들이가 포와로 시집가기로 결심하는 부분이다.
 
"포와로 시집가면 공부할 수 있다는 말 참말이지예?" 공부만 할 수 있다면 호강하지 못해도 좋았다. 설령 고생을 한다고 해도 한 번쯤은 자신만을 위해서 하고 싶었다. (21쪽)

공부를 한다는 것은 자신을 강하게 만드는 힘이다. 생각을 세우는 기준이 된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이룬 여러 요인 중의 하나가 교육열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어려운 시절을 살아내면서 우리 부모가 끝까지 고집한 것이 있다면 '자녀 교육'이다.

집안의 장손, 아들에게 거는 기대는 실로 엄청났다. 그 아들이 공부에 조금이라도 능력을 보이면 그 아래 모든 자식과 부모는 두손 두발 걷어붙이고 장손의 교육과 성공에 몰입했다. 장손도 아들도 아니었던 버들은 자신만을 위한 공부를 하고 싶어 그 먼 길을 떠난다.

먼 땅 하와이에서 조선 여성들의 삶 


1944년생인 나의 엄마는 5남 5녀의 다섯째로 태어났다. 중학교까지 교육받은 엄마는 늘 우리 다섯 남매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하셨다. 그 시절 우리를 앉혀 놓고 가르치지는 못했어도, 아버지와 함께 딸·아들 구별 없이 모두 대학 교육까지 뒷바라지하셨다. 그렇게 엄마의 꿈을 먹고 성장한 나는 두 아들이 어릴 때 나란히 앉아 열과 성을 다해 함께 공부했다. 그것은 나의 꿈을 위해서이기도 하고, 아들의 꿈을 위해서이기도 했다.

17살에 과부가 된 버들의 가장 친한 친구 홍주와 할머니가 무당이어서 마을에서 사람대접 받지 못하는 송하, 이렇게 셋은 포와로 간다. 포와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버들의 신랑 태완은 첫사랑을 마음에 품고 있어 곁을 내어주지 않는다. 서른아홉으로 알고 온 홍주의 신랑은 마흔아홉이다. 송화 신랑은 버들의 시아버지보다 한 살이 적다. 나이도 많은 데다 송화에게 손찌검을 한다.


사탕수수 농장에서 힘들게 일을 해도, 세탁소에서 힘든 노동을 해도 그들은 조국의 독립운동을 위해 후원금을 보낸다. 그 시절 포와에서 조선인들을 하나로 묶는 곳이 교회인데 그 교회는 이승만파와 박용만파로 나뉘어 서로를 비난한다. 태완은 박용만 독립단 사무실에서 받은 월급을 독립 후원금으로 다 낸다. 버들이 불퉁스럽게 말하니 태완이 답한다.
 
"그거이 나 살 만해질 때꺼정 조국 독립을 미루자는 말하고 뭐이 다르간. (...) 당신 말대로 고저 밥 굶기지 않는 아버지가 아니라 독립된 조국을 물려주는 아바지가 되고 싶누만." (232쪽)

독립 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태완이 떠난 뒤 버들은 홍주와 송화 셋이서 아이를 키운다. 자신이 낳은 아이를 신랑이 데리고 조선으로 가버린 홍주는 가슴에 아들을 묻는다. 신랑이 죽고 혼자서 아이를 낳게 되는 송화는 버들의 아이들 정호(데이비드)와 펄의 또 다른 엄마가 된다. 버들은 독립 운동으로 다리를 다치고 몸이 병들어 온 태완을 아이들에게 훌륭한 분이라고 말한다.

버들의 아이들이 자라 자신의 꿈을 찾아간다. 태완은 "자식한테 독립된 조국을 물려주기 위해 독립 운동을 했지만 아들이 조국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정호는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 이민 2, 3세로 미국에서 취직하고 성공하기 위해 입대하려 한다. 펄은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 춤을 추고자 한다. 버들과 송화와 홍주의 딸인 펄이 엄마의 생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삶을 그린다.

재외동포 이민 100여 년의 역사 가진 우리 

시대에 따라 처한 상황이 다르지만, 그 속에서 산 그들의 삶을 통해 그들의 결정과 아픔을 이해하고 기억한다. 세대는 다르지만, 똑같이 격렬하게 고민하고 결정하는 청춘들이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잡으면 나는 대략 펄의 다음 세대이다. 나의 엄마는 펄과 같은 세대이다. 펄이 펼쳐 나갈 그녀의 삶과 나의 엄마가 펼쳤던 삶을 그려본다.

엄마에게 물어본 적이 없으니 언제가 좋았는지 무엇이 제일 아쉬웠는지 알 길이 없다. 오늘, 나에게 묻고 답한다. "너는 너의 삶에서 무엇이 좋았고, 무엇이 후회되니?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니?" 종이에 적어본다. 소리 내어 읽어본다. 나의 꿈을 향해 오늘도 나를 보듬는다.

우리 아이들은 그다음 세대이다. 버들에서 이어진 네 번째 세대(1990년대생) 청춘들이 꿈을 펼치고 있다. 다섯 번째 세대(2020년대생)는 이제 아장아장 걸음을 내딛고 있다. 그들이 이 책을 만나면 어떤 생각을 할까? 부끄럽지만 나는 책을 통해 '사진신부'를 처음 알았다. 역사는 우리가 기억해야 힘을 가지는 것이다. 함께 기억하게 해 준 작가에게 감사하다. 이금이 작가가 <작가의 말>에서 묵직하게 던진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살고 있는 결혼 이민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그들 또한 자기 가족과 집과 나라를 떠나는 일이 큰 모험이었을 것이다. (중략) 버들과 홍주, 송화 이야기가 현재의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 되었으면 좋겠다." (399쪽)

재외동포 이민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다. 지금 우리는 발전한 나라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꿈을 이루고자 찾아오는 외국인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100여 년 전 사탕수수 농장에 일하기 위해 조선 사람들이 배를 타고 포와에 간 것처럼 태국, 우즈베키스탄, 몽골 등 여러 국가에서 우리나라에 일을 하러 온다. 중국 조선족들도 다수 있다.

버들이 포와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이 레이(Lei: 하와이를 방문하는 사람의 목에 걸어주는 꽃목걸이)를 걸어 준 것처럼 그들에게 환영과 축하와 위로를 건네주는 우리가 되어보자. 그들의 정착을 돕는 교육과 제도는 국가에서 마련하고, 공동체에서 우리가 먼저 이웃으로 손을 내민다면 그들과 함께하는 문화가 만들어질 것이다. 어렵지만 함께 해낼 수 있다.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 우리 서로 다정하게 함께 살았으면 한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브라이언 헤어와 바네사 우즈가 쓴 책 제목으로 끝맺음한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 (양장)

이금이 (지은이),
창비, 2020


#알로하나의엄마들 #내마음을담은리뷰쓰기 #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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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 영통구에 사는 50대 프리랜서입니다. 책을 읽고 인문학 강의를 들으면서 사회와 소통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대면으로 줌으로 인스타로 다양한 이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쓰고자 합니다. 2018년~2022년까지 영통마을신문 기자로 활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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