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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역사를 품고 있는 인도의 수도

[인도] 파괴와 침략의 역사를 가진 델리

등록 2023.04.13 09:39수정 2023.04.13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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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라에서 델리까지의 기차 여행은 세 시간 남짓입니다. 이제 이정도의 여행은 길다는 생각도 잘 들지 않습니다. 그렇게 손쉽게 인도의 수도 델리에 도착했습니다. 인도 입국 뒤 거의 한 달이 지나서야, 드디어 수도 델리입니다.

델리는 인도의 수도이지만, 한편으로 여행자들이 기피하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수도인 만큼 복잡하고 사람이 많으니까요. 인도 여행에서 기대하는 신비로운 풍경은 없습니다. 오히려 델리에서의 사기와 고생담은 쉽게 들어볼 수 있죠. 아마 델리를 통해 인도로 처음 들어오는 여행자가 많아서겠지만요.


하지만 어쨌든, 델리는 인도를 대표하는 수도입니다. 정확히는 델리 국가수도구역(NCT)이 연방 직할지로 관리되고, 그 가운데 있는 뉴델리가 인도의 수도지요. 델리 지역은 오래 전부터 도시를 형성하고 있었고, 천여 년 전부터 인도의 중심지였습니다. 하지만 델리의 역사를 생각한다면, 여행자들이 델리를 기피하는 이유도 이해가 될 수 있겠습니다.
 
 파하르간즈 거리
파하르간즈 거리Widerstand

델리는 오랜 기간 인도 역사의 중심지였지만, 그것이 썩 유쾌한 방식은 아니었습니다. 아그라는 무굴 제국의 전성기를 함께한 땅이었죠. 덕분에 남아 있는 유적도 아주 화려하고 거대합니다. 하지만 델리는 현재 인도의 수도이지만, 발전이나 확장보다는 침탈과 파괴의 역사가 더 많이 쌓여 있습니다.

델리가 인도 역사의 중심지가 된 것은 12세기 이후의 일입니다. 이 시기부터 델리를 중심으로 북인도를 장악한 왕조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투르크계 집단이었죠. 모두 이슬람교를 믿는, 대부분의 인도인 입장에서는 이교도이고 이민족이었습니다.

원래 10세기부터 중앙아시아 국가가 남아시아를 침입하는 것은 빈번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남인도 지역을 약탈한 뒤 중앙아시아 초원 지대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체계적으로 북인도를 지배하기 위해 침공을 시작한 것은, 1173년 무함마드 고리(Muhammad Gori)가 처음이었습니다.

무함마드 고리는 델리를 비롯한 북인도 일대를 차지했지만, 1206년 암살당합니다. 그의 노예였던 쿠틉 웃 딘 아이박(Qutb ud-Din Aibak)이 곧 정권을 잡았죠. 명목상으로는 노예이지만, '맘루크'라는 이 노예 집단은 매우 강력한 정예병 집단이기도 했거든요.

이후 델리에 기반한 이슬람 왕조는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대부분 체계적인 제국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혼란 끝에 빠르게 멸망했죠. 맘루크 왕조 이후 할지 왕조, 투글라크 왕조, 사이드 왕조, 로디 왕조까지 여러 왕조가 지나갑니다. 이들 왕조를 모두 통칭해 '델리-술탄 왕조'라 부르죠.
 
 쿠틉 미나르
쿠틉 미나르Widerstand

델리-술탄 왕조는 대부분 현지인 힌두교도에 대해 강압적인 정책을 펼쳤습니다. 혼란스러운 시대였던 만큼, 권력의 탈취를 심각하게 경계한 탓이었죠. 힌두교 성전에 대한 파괴와 강제동원, 때로 학살까지도 벌어졌습니다.


그 시절의 유산은 아직도 델리에 남아 있습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쿠틉 미나르(Qutub Minar)가 대표적이죠. '미나르'란 이슬람 사원의 첨탑을 말합니다. 언급한 쿠틉 웃 딘 아이박이 만든 첨탑이라서, 그의 이름을 따 '쿠틉 미나르'라는 이름이 붙었죠.

72.5m 높이의 이 탑은, 인도에서 현존하는 첨탑 중 가장 높은 것입니다. 그 높이만으로도 힌두를 무너뜨린 이슬람의 권위를 상징하는 탑이지요. 이 탑이 있던 모스크도 남아 있습니다. 이 모스크는 주변에 있던 힌두교와 자이나교의 사원을 파괴한 뒤, 그 석재를 이용해 만든 것입니다. 힌두를 파괴하고 세워진 이슬람 왕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현장입니다.
 
 쿠틉 미나르 인근의 유적
쿠틉 미나르 인근의 유적Widerstand

델리-술탄 왕조의 마지막을 장식한 로디 왕조는 무굴 제국에 의해 멸망합니다. 무굴 제국은 이전의 델리-술탄 왕조와 달리 현지인에 대한 관용을 중시했습니다. 하지만 델리는 그 역사를 함께하지 못했죠. 무굴 제국은 곧 수도를 아그라로 옮겼습니다. 후일 델리로 돌아온 무굴 제국은 이미 몰락을 시작한 뒤였습니다. 덕분에 델리에 남아 있는 무굴 제국의 유산 역시 허망한 느낌을 주는 것들이 많습니다.


역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붉은 성도 그렇습니다. 붉은 성은 타지마할을 만든 샤 자한이, 델리로의 천도를 구상하며 만든 건축물입니다. 하지만 그는 아들인 아우랑제브에 의해 축출되었죠. 덕분에 정작 이 성을 처음 사용한 것은, 지나친 건축사업을 비판하며 아버지를 유폐한 아우랑제브였죠. 아우랑제브는 이교도에 대한 관용 정책을 폐지했고, 무굴 제국은 곧 몰락의 길로 접어듭니다.

무굴 제국 초기에 만들어진 성, 푸라나 킬라(Purana Qila)도 마찬가지죠. 무굴 제국의 2대 황제인 후마윤이 만든 성벽이었죠. 하지만 후마윤은 지방 세력의 반란으로 델리를 잃고 이란으로 도주해야 했습니다. 15년이 지난 뒤 그는 다시 델리를 차지했지만, 1년도 지나지 않아 성의 계단에서 떨어지며 허무하게 사망합니다.
 
 후마윤 영묘
후마윤 영묘Widerstand

델리에는 물론 후마윤의 영묘도 남아 있습니다. 붉은 사암으로 만들었지만, 타지마할의 원형이라 불리는 공간이죠. 실제로 색만 다를 뿐, 영묘의 배치나 구성이 타지마할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물론 화려한 공간입니다.

하지만 후마윤의 영묘는 또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포이 항쟁 당시 무굴 제국의 마지막 황제가 아들과 함께 피신한 곳이 이곳이었죠. 결국 그는 여기서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폐위됩니다.

그렇게 무굴 제국은 멸망하고, 영국령 인도 제국이 공식 출범하게 되죠. 무굴 제국이 완전히 멸망한 곳이 바로 이 유적입니다. 그렇게 보면 영묘의 화려한 장식도 왠지 꼭 화려하게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세워진 영국령 인도 제국의 수도는 콜카타였습니다. 수도가 다시 델리로 돌아온 것은 1912년의 일입니다. 벵갈 분할령 이후 콜카타에서 시작된 인도 민족주의 운동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의도가 짙었죠. 그때 새로 건설된 수도가 바로 지금의 뉴델리입니다.
 
 뉴델리 중심의 코넛 플레이스
뉴델리 중심의 코넛 플레이스Widerstand

델리는 인도의 역사를 함께 한 땅이었습니다. 델리를 얻는 것이 곧 인도를, 그리고 인도의 부를 얻는 것이었던 시절이 있었죠. 델리-술탄 왕조에서부터 무굴 제국, 그리고 영국 지배 시절까지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어쩐지 델리에 쌓여 있는 흔적은 대부분 파괴와 폭력, 탄압과 학살에 대한 기억입니다. 여행자들이 델리에 대해 썩 좋은 기억을 갖고 있지 않은 것도, 유적에 깔려 있는 그런 분위기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발전과 전성기의 역사 만큼이나, 파괴와 침략의 역사도 인도의 역사입니다. 인도인이 살고 있는, 인도인이 역사로 겪은 인도의 일면입니다. 아그라에 인도 역사의 밝은 시대가 있다면, 델리에는 그만큼이나 중요한 어두운 시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델리의 인디아 게이트
델리의 인디아 게이트Widerstand

인도는 거대한 나라입니다. 얼마 전에는 중국을 넘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나라가 되었지요. 그런 만큼 또 델리는 많은 사람들이 사는 거대한 땅입니다. 이 번잡스러운 도시는 우리가 이상화하고, 여행자가 원하는 인도의 모습과는 다를 수도 있겠죠.

살아 있는 사람의 움직임도, 죽은 사람의 흔적도 델리에는 많습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야만 하는 땅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사는 나라, 그 역사와 사람의 한복판에 우리가 있다는 느낌을 주는 도시입니다.

어두운 역사를 품고 있지만, 델리는 인도의 수도입니다. 인도를 만나고 싶다면, 여전히 델리는 피할 수 없는 땅이겠죠. 파괴로 점철된 어두운 역사도, 오토릭샤가 경적을 울리며 지나가는 복잡한 골목도 모두 델리의, 또 인도의 모습일 테니까요.
덧붙이는 글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에 동시 게재됩니다.
#세계일주 #세계여행 #인도 #델리 #뉴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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