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접란1올해 첫 꽃을 피운 호접란
박상준
올해 봄에도 우리 집 거실의 호접란이 자줏빛에 가까운 붉은 꽃을 피웠다. 이 꽃을 볼 때마다 식물과도 인연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느 고등학교 건물의 복도 구석진 곳에 흐물흐물한 잎이 힘없이 늘어져 다 시들어 버린 채 버려진 식물이었다. 그때는 이 식물의 이름도 모른 채 치워 버리라고까지 했는데 지금 우리 집에서 2년째 꽃을 피우고 있다.
우연히 발견한 호접란
이 호접란을 발견한 곳은 사립학교 법인인 '○○학원'에 속한 ○○고등학교의 행정실 옆 구석진 곳이었다. ○○학원은 몇 년 전 급식 비리로 이사회가 승인 취소된 후 교육청에 의해 구성된 관선이사회를 비롯한 학교 구성원, 지역사회의 노력으로 이제는 정상화된 사학법인이다. 개교 이래 비리가 끊이지 않아 이전에도 이사장이 승인 취소된 경우가 두 차례나 있었다.
감사에 의해 급식 비리가 드러나 이사장을 비롯한 이사회 전체가 승인 취소되기에 이르게 되어 학교 운영이 어려워졌을 때 나도 관선이사회에 참여하여 학교를 정상화하기 위해 작은 힘이나마 보태게 되었다.
이때 행정실 옆 복도의 한구석에 버려져 있던 이 화분이 있었는데 1년 가까이 출퇴근하면서도 끝날 무렵까지 있는지조차 모르고 지냈다. 겨울을 지나는 동안에도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고 돌보지 않으니 다들 폐기된 화분으로 취급했다. 나도 몇 달을 그 옆을 지나다니면서도 전혀 의식하지 못했는데 학교의 정상화 절차를 밟아가던 어느 날 그 화분에 축 늘어지긴 했지만 잎이 아직 녹색을 띠고 있는 것이 내 눈에 들어왔다. 잎이 늘어진 채 죽은 듯이 있는 모습이 작은 식물이긴 하지만 애처롭게 여겨졌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 있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게 인연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그곳에 화분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무심히 지나다니다가 ○○학원이 정상화되는 이때 눈길이 가게 된 것을 인연이 아닌 다른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이즈음 아내가 식물 기르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던 때라 혹시나 살릴 수 있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감을 갖고 집으로 가져왔던 것도 다 인연이 닿아서 그런 것 같다. 아내에게 맡길 때만 해도 이렇게 아름다운 꽃을 해마다 선물 받게 될 줄은 몰랐다.
다시 살아나 화려하게 피운 꽃을 볼 때마다 그때의 기억들이 추억이 되어 떠오르곤 한다. 그때도 나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화분 옆을 지나다니던 내게 호접란이 "죽었던 ○○학원의 명예도 다시 다시 살아나 정상화되는데 이 호접란도 좀 살려보는 건 어때?" 하며 말을 걸어 온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그런 엉뚱한 상상도 한다.
○○학원은 교육청과 관선이사회, 교직원, 학부모, 지역사회의 헌신적인 수고와 노력 끝에 사학분쟁조정위원회에 의해 정이사들이 새롭게 선임되면서 정상화의 결실을 맺게 되었다. 그동안 관선이사회가 쾌적한 교육환경을 위해 전면적인 보수와 보강공사를 통해 학교 시설을 통해 학교 시설을 개선하였으나 급식 비리의 불명예를 안겨 주었던 급식실 공사는 여러 사정으로 완공하지 못한 채 관선이사회를 마치게 된 것이 못내 아쉬웠다.
피어난 꽃이 우연 같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