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여름 국회 앞에서의 시위
포스코 기후재판 시민불복종 연대모임
온갖 좋은 말들이 난무하는 이 시기는 마치 모든 이들이 나서서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정말 오랜 시간 동안 민중을 억압해왔던 지배계급은 한순간에 착한 친구가 된 것인가? 그럴 리가. 그들에게는 새로운 돈벌이의 기회가 생겼을 뿐이고, 국제적 압력에 못 이겨 검은 속을 가리기 위해서 새로운 녹색 포장지를 마련했을 뿐이며, 중산층 시민들만 실천 가능한 새로운 소비양식을 만들어 낼 뿐이다. 그리고 문제를 개인적인 것으로 만들며 민중을 비정치화된 소비자로 만드는 것이다.
평화로운 친환경 세상의 이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이 여전히 행해지고 있다. 나는 기후위기가 인간 역사의 모든 불평등 중 최후의 불평등한 폭력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지금껏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여성의 돌봄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고, 남반구와 이주민들의 노동을 수탈하며, 장애인이나, 노인 등 생산에 쓸모없는 존재들을 배제 시키며, 이윤 창출과 경제성장을 위해 달려온 자본주의 열차의 마지막 폭력이다.
그들은 성장의 동력으로 화석연료를 무한정 꺼내썼으며, 무분별한 생태학살을 자행했다. 그 결과가 기후 생태위기이고, 그마저도 불평등하게, 서서히, 세계의 가장 낮은 곳으로부터 찾아온다. 그러니 이러한 구호가 들리는 것이다. "자본주의냐, 생존이냐." "멸종이냐 체제전환이냐."
기업과 국가의 온갖 기만적 행태 속에서 생존을 택했던 이들이 있다. 그들은 착한 환경주의자가 되기를 거부하고, 생태학살을 자행하며 녹색 분칠을 하는 기업들을 고발하고, 기업의 이익을 보호하는 법질서에 불복종하기를 택했다. 그들은 생존과 정의를 위해 평화의 바리케이드를 넘어서기를 택해야만 했다. 녹색당의 포스코 기후 불복종 직접행동이 그랬으며, 멸종반란의 가덕도 신공항 반대 민주당사 직접행동이 그랬고, 청년기후긴급행동의 붕앙-2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 반대 직접행동이 그랬다.
내가 작년 말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청년기후긴급행동은 참 이상한 단체이다. 청년이란 범위는 너무 넓어서 단일한 정체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계급, 성별, 이념, 살아온 삶이 모두 이질적이다. 그러니 2020년, 단체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기후위기의 긴급한 대응이라는 목적 하나만으로 뭉쳐서 활동했었고, 이는 뿌리로부터의 힘을 만들어 내기에는 금방 휘발되어 버리는 공허한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2021년 2월 청년기후긴급행동은 앞에서는 친환경을 외치며, 베트남 하띤성에 붕앙-2 신규 석탄발전소를 짓고자 하는 두산 에너빌리티와 삼성물산 등 기업들의 생태학살과 녹색 분칠을 고발하기 위해서 분당 두산타워 조형물에 녹색 스프레이 칠을 했다.
그러나 청년기후긴급행동에게 날아든 것은 민·형사 재판의 기소장이었다. 선진국 대한민국의 기업이 자신들의 이윤과 경제성장을 위해서 개도국인 베트남에 지역 생태계와 공동체를 파괴하는 석탄발전소를 수출한 것은 명백한 생태학살이며 기후 부정의를 초래하는 행위이지만 법질서는 그들을 수호했다. 청년기후긴급행동의 활동가들은 한국의 시민으로서 가해의식을 느꼈고, 이는 곧 자기 자신의 정체성과 삶을 마주하는 계기가 되었다. 각자가 경험해 온 억압과 폭력들을 말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단지 개인적인 것이 아닌 억압과 착취의 사회 구조 속에서 발생한 것임을 말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