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주 '세 번째 권력' 공동운영위원장
애증의 정치클럽
학생운동을 거쳐 세대별 노동조합 청년유니온에서 활동한 조성주 정치발전소 이사장은 진보정치에서 언제나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최근에는 류호정·장혜영 의원과 함께 정의당 재창당 모임 '세 번째 권력'의 공동운영위원장을 맡아 또 한 번 화제가 되었는데요.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정치발전소에서 지난 4월 27일에 만나 90분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새로운 도전, 세 번째 권력
- 최근 '세 번째 권력' 출범식에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참석한 게 화제가 됐는데요. 특히 이준석 전 대표를 부른 것을 두고 기존 정의당 지지층 사이에선 반발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위원장님께서는 페이스북에 "배울 게 있는 정치인이어서 초청했다"고 밝히셨는데요.
"애초에 세 번째 권력 출범식을 기획하면서 축사를 누구에게 부탁하면 좋을까 했을 때 제일 먼저 거론된 인물이 이준석, 박지현이었어요. '진영정치', '상대를 악마화하는 정치'를 극복하기 위해 못 부를 사람은 없다는 게 저희 생각이었어요.
이준석 전 대표가 페미니즘을 공격하고 그런 방식의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것에 대해 전혀 동의하지 않아요. 그러나 이 전 대표가 국민의힘이라는 한국의 보수정당 안에서 광주 5.18과 제주 4.3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내온 건 존경받을 만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정치적으로 적이어도 배울 게 있다면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어요. 생각이 가장 다른 사람을 불러 이야기를 듣는 게 정치예요. 당연히 생각이 100% 일치하진 않겠지만 1%의 공통점만 찾을 수 있어도 만나야 해요. 그런 측면에서 (이 전 대표의 말이) 지금 저희가 가장 들을 만한 이야기라고 판단했어요."
- 세 번째 권력은 거대양당의 틀을 깨려는 시도인데, 진보당이나 녹색당 등 다른 진보정당과의 연대는 모색하지 않으셨나요?
"지금 진보라 불리는 곳들을 묶어내는 것은 한국 정치의 의미 있는 행위가 아니에요. 오히려 퇴행적이라고 봐요. 결국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 모이는 거거든요.
진보정당의 역할은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대표되지 않던 한국 사회의 왼쪽에 있는 목소리를 대표하는 거였어요. 그 목소리를 한국 정치에 들여오면서 절반의 성공을 거뒀어요. 문제는 그 목소리가 진짜 권력의 중심까지 못 간 거죠. 그 지점에서 진보정당은 실패했죠.
그래서 세 번째 권력은 이제 새로운 도전을 떠나자고 말하는 거예요. '진보'라는 타이틀조차도 저는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진보정당으로서 왼쪽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은 이제 유효기간이 다 됐어요."
- "진보라는 타이틀도 버릴 수 있다"라는 메시지는 기존의 지지자들에게 반감을 살 수 있잖아요. 오히려 집권 가능성을 더 떨어뜨리는 방식은 아닐까요?
"정의당을 지지하는 진보적 지지층이 무너졌기 때문에 정의당에 위기가 온 거잖아요. 지지층은 이미 떨어져 나가 있는 것 같아요. 진보라는 의미를 재구성해서 완전히 새로운 정당으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돼요. 지금의 토대 위에서 정의당을 복원하는 것은 어렵다고 봐요.
복원이 어렵다는 것은 그동안 몇 번의 선거에서 증명됐어요. 기존에 정의당을 찍어주던 사람들은 주로 지역구를 민주당에 투표하고 비례대표를 정의당에 찍는 거였거든요. 그런데 민주당 강성 지지자들이 예전에는 정의당에 비례대표를 찍어주다가 정의당이 민주당 대오를 흐트러뜨린다고 느끼면 지지를 철회하는 거예요. 심지어 '조국 사태' 등 문재인 정부 5년을 거치면서 일반 유권자들도 더는 비례대표로 정의당을 찍어주지 않는 거예요. 민주당과 차이가 없다고 보는 거죠."
"힘 있는 사람만 타협할 수 있거든요"
- 출범식에서 "재벌·검찰·기업을 거대악으로 규정하는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된다"라고 하셨어요. 이에 대해 정의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리는데요.
"'어떤 거대한 악이 있고, 그것을 척결하면 사회의 정의가 실현된다'. 87년 체제는 이 문장으로 설명되는 것 같아요. 검찰, 재벌 같은 거악 때문이라고 여겨지는 문제는 그들이 가진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풀리는 겁니다. 사회의 복합적인 문제들 사이 균형을 맞출 때 해결되는 거죠.
저는 거악 척결의 논리가 오히려 그들을 강화한다고 봐요.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을 거악으로 규정하고 개혁한다고 했던 게 검찰 대통령을 만들었잖아요. 거악 척결의 논리는 이렇게 왜곡돼있어요. 이거야말로 가장 나쁜 방식의 정치적 레토릭이에요. 일종의 맥거핀, 또는 위장된 갈등이죠. 재벌과 검찰이 문제가 없다는 게 아닙니다. 문제가 있지만 그들을 악으로 규정해서 척결해야 한다는 논리로는 해결이 안 된다는 거죠."
- 보수정당을 악으로 규정하는 사람들은 정의당이 표를 분산시켜서 거악 척결의 걸림돌이 된다고 보기도 하잖아요.
"죄송하게도 세상이 그렇게 구성돼 있지 않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어요. 여기서 저쪽을 척결하기 위해서 단결해야 한다고 하면 저쪽도 똑같이 얘기하고 있을 거거든요. 쳇바퀴 돌듯 서로를 악이라고 얘기하면서 다원적 목소리들을 누르고 있어요. 거악 척결에 집중해야 하는데 여성, 이주 노동자의 권리 이야기를 왜 지금 하냐는 식이죠. 그런 논리에 빠지는 게 지금의 기득권 정치가 가장 바라는 방식이에요. 그렇게 했을 때 더 많은 시민들이 정치에서 질려서 떨어져 나갈 거라고 보는 거죠."
- 세 번째 권력이 말하는 자유주의적 다원성은 선악의 구분을 해체한 대화와 타협을 추구하잖아요. 이런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차별금지법처럼 완전히 세계관이 다른 사람들이 부딪치는 의제요. 정의당이 줄곧 추구해온 의제를 세 번째 권력의 방향성으로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요?
"자유주의적 다원성은 일종의 윤리의 문제지 그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봐요. 우리가 어떻게 공존하고 어떻게 절제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죠. 자유주의와 다원성을 강조했던 건 포퓰리즘 때문이에요. 차별금지법은 다원성으로의 흐름을 대표하는 의제인데, 포퓰리즘과 권위주의가 이를 다시 억압하고 있어요. 민주주의를 견제하기 위해서도 자유주의와 다원성이 필요해요. 민주주의는 다수 지배의 원리로 작동하기 때문에 오히려 다원성에 대한 위협으로 돌변할 수도 있어요. 그게 포퓰리즘이기도 하고요.
차별금지법 같은 이슈에서 타협하는 건 가능하다고 봐요. 저는 우리 사회가 차별금지법이 충분히 통과될 만한 사회였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반대 의견이 있다면 법이 통과되는 것보다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인식이 공유되는 게 훨씬 중요하죠. 제가 좋아하는 정치학자 로버트 달이 '헌법을 바꾸는 것보다 헌법에 대한 우리의 해석을 바꾸는 게 더 중요하다'고 얘기했듯이.
사실 차별금지법은 상징에 불과해요. 그것이 실질적으로 차별의 시선을 해결해 줄 거라고 보지 않아요. 그럼에도 차별금지법은 제정돼야 해요. 얼마든지 타협의 지점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보수 쪽에서도 무조건 반대하는 사람들만 있지 않을 거예요."
- 차별금지법은 원안 통과가 핵심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잖아요. 타협은 나쁘게 보면 후퇴니까요. 중대재해기업처벌법도 정의당 원안이 민주당, 국민의힘과 타협한 형태로 통과돼 비판받았고요.
"'통과됐지만 너무 후퇴해서 의미가 없다', 이런 평가에 전 동의하지 않아요.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것도 아니고 큰 진전이 있었다고 봐요. 지난달 29일에 중대재해법 위반으로 첫 구속이 나왔어요. 정치는 원하는 만큼의 한 발을 다 갈 수 없어요. 누군가에게는 끊임없는 후퇴일지라도 조금씩 갈 수밖에 없어요. 사울 알린스키가 말했듯 '타협은 승리의 다른 말'이에요. 힘이 있는 사람만 타협할 수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