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다른 곳을 바라보지만, 인생의 길을 함께 걸어온 아버지와 어머니. 어머니의 가게에서
류창현 포토디렉터
흑백사진 속 젊은 날의 아버지는 마치 영화배우 같다. 일흔을 앞둔 나이, 요즘 부쩍 머리카락이 빠져서 '아버지의 아버지'를 닮아간다며 그가 멋쩍은 표정을 짓는다. 어머니가 "그때나 지금이나 멋지기만 하다"라며 수줍게 웃는다.
1977년, 아버지와 어머니는 동구 송림동에 있는 대성다방에서 처음 만났다. 직장 동료 남자 셋, 여자 셋이 만나 두 사람만 짝이 되었다. "그때는 아내가 참 예뻤는데, 그 곱던 사람이 어느새 육십이 훌쩍 넘었네요." 바라보는 눈빛에 애틋함이 가득하다.
175cm 키에 58kg 몸무게. "비쩍 말라서는, 어디 하루나 버티겠나"라며 공장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1973년 가을, 스무 살의 황희수(69)씨는 목재 회사 '이건산업'에 들어갔다. 출근 첫날부터 열두 자(尺) 크기 합판을 작업장 끝에서 입구까지 옮기는 작업을 종일 했다. 하루 12시간 근무하는 동안 오전 오후 딱 두 번 단 10분만 쉴 수 있었다.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합판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하루 일이 끝나면 피로와 함께 뼈끝 녹아드는 고통이 몰려왔다. 사흘 만에 '다시는 나가지 않겠노라' 다짐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수봉산 자락에 기댄 낮은 집엔 편찮으신 아버지와 어머니, 어린 동생들이 자신만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날 자리에서 일어날 수도, 수저를 들 힘도 없던 그를 어머니가 눈물 흘리며 일으켜 주셨다. '내가 일해야 가족이 먹고산다.' 버텨내야 했다. 그렇게 그는 노동자의 삶으로 걸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