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베이글 제주점 오픈 한 달 후 근황
허윤경
줄 서서 먹는 베이글은 더 맛있을까? 줄까지 서서 먹는 이유가 뭘까? 10-20분도 아니고 1-2시간, 길게는 3-4시간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속마음이 궁금하다.
추정하건데 줄 서기의 시작은 아마 호기심이 아닐까. 어떤 맛일까 궁금한 사람들이 줄을 선다. 남편이 대기를 포기하고 돌아섰지만 구매에 성공한 듯 보이는 두 사람이 뒤따르며 나누는 대화가 재밌었다며 전해주었다.
"맛없기만 해 봐!"
"한 번 먹어보는 거지 뭐."
"무슨 빵 몇 개에 몇 만 원이냐고."
이 둘이 다음에도 또 줄을 서서 베이글을 사러 올지 사뭇 궁금하다.
사람들이 줄을 서는 그 다음 이유는 '나도 해봤다' 하는 '인증' 욕구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개인 SNS에 활동이 어느 때보다 활발한 요즘이다. 누구보다 빠르게 관련 내용을 업로드 함으로써 얻게 되는 만족감과 '좋아요' 숫자는 긴 줄의 고됨도 꿋꿋이 버틸 수 있는 힘을 준다.
줄 서기 꿀팁, 메뉴 추천, 매장 분위기 등 정보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긴 줄에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들 대다수가 인증을 통한 인정의 희열 때문에 중간에 발을 뺄 수 없다. 다른 시간, 다른 곳 줄 선 인파에도 이들이 있다.
또 다른 동기는 '아는 맛'일 테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는다'고 이미 베이글의 맛을 본 사람들이 그 맛을 잊지 못하고 또 줄을 서는 것이다. 기다림의 시간마저 그까짓 거, 하찮게 여길 수 있는 맛의 신세계가 그곳에 있는 모양이다. 눈바람의 추위에도, 강렬한 태양빛의 더위에도 맛있는 건 포기할 수 없는 그 마음을 조금 알 것도 같다.
그저 즐기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줄을 서는 그 자체가 놀이의 한 종류이고 추억을 쌓는 시간인 것이다. 그날 그때, 거기에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특별한 경험이 되어 두고두고 곱씹을 기억의 편린이 된다. 소중한 사간을 왜 낭비하느냐며 누군가는 수군거릴 수 있겠으나 여기에 속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걱정은 의미 없다. 경험이 곧 재산이다.
사람들이 줄을 서는 여러 가지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지만 핵심은 희소가치이다. 베이글 매장이 전국에 3군데가 아니라 30군데라면, 온라인 주문 배송이 가능하다면 지금과 같이 길게 줄을 서는 광경을 목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2004년 12월 신촌에 크리스피도넛 1호점이 생겼을 때를 소환해본다. 도넛 하나 먹겠다고 사람들은 줄 서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지금은 어떤가? 전국에 매장이 없는 지역이 없을 정도로 대중화되었다. 그런데 매장 수가 늘어나고 언제, 어디서나 크리스피 도넛을 살 수 있게 되자 관심과 인기는 사그라들어 흔하디 흔한 도넛이 되어버렸다. 크리스피 도넛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셰이크쉑(쉑쉑) 버거가 강남에 처음 오픈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베이글집이 지점을 늘려주지 않는 이상 현재로서는 서울 지점에 이어 제주 지점 또한 줄을 서야 (그것도 오래) 베이글을 맛볼 수 있다. 제주 도민이야 오다가다 운이 좋으면 한 번은 얻어걸리는 날도 있을 테지만 촉박한 일정으로 제주를 방문한 여행객들이라면 웨이팅 시간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기다림 끝에 드디어 매장 안으로 입장했는데 찜해 두었던 베이글이 없는 곤란한 상황 또한 염두에 두어야겠다.
누군가는 그 시간과 노력으로 다른 경험을 하겠다고 하고, 또 누군가는 베이글 맛이 다 거기서 거기라며 끝끝내 줄 서지 않을 수도 있다. 줄을 서는 자, 서지 않는 자 어느 한 쪽이 옳고 다른 쪽은 그르다고 할 수는 없다.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그 가치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본인이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친구가 강남 간다고 무작정 따라가지 말고, 강남에 뭐가 있는지, 강남에 가면 어떤 점이 좋은지 알아보고 따라나서도 늦지 않다. 내 취향을 아는 게 먼저이다. 남들에게 좋은 게 내게도 좋을 거라고 확신할 수 없다. 모두가 줄을 선다고 해서 그 줄에 나도 꼭 끼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뒤돌아 선 곳에 내 입맛에 꼭 맞는 동네 맛집이 있을 지도 모른다. 긴 줄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보물 같은 곳.
소풍날 설레는 마음으로 보물을 찾아 나서던 발걸음이 기억난다. 보물은 여러 개이지만 이미 발견된 보물은 내 것이 될 수 없다. 내가 찾은 보물만이 내 것이 된다. 내 인생의 보물찾기, 지금부터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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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처음에는 우연히 보았다가도 또 생각나서 찾아 읽게 되는, 일상의 소중함이 느껴지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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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 줄 서서 베이글 먹기? 내 취향 아는 게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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