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학교 비대면 수업0대 어르신들이라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못해,?코로나19때 과제를 대문이나 우체통에 과제물 봉투를 매달아 주고 받는 방법으로 비대면 수업을 했다.
이상자
그걸 듣자 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2~3일만 죽을 먹어도 기운이 없는데 벌써 20여 일이라니 어떻겠는가. 나는 위내시경 검사를 해보시라고 권했다. 그랬더니 반장님 왈, 작년 12월에 위내시경 검사 했을 때 위염이라고 했었단다. 그래서 이번 종합병원에 입원 중일 때 의사가 위내시경 검사하자고 해도 안 했다고 했다.
나는 의사마다 판독이 다르니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위내시경 검사를 해 볼 것을 권했다. 그랬더니 반장님은 본인 아픈 것은 본인이 잘 안다고 했다. 무언가 먹고 체했는데, 그렇게 자꾸 체하기를 반복해서 그런 것 같아 당장은 위내시경 검사는 하지 않고 참아보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더 걱정되었다. 소화가 안 된다고 한 지가 20여 일이 지났기 때문이다. 불안하고 마음이 무겁다. 그동안 공부하다 유명을 달리하신 분 생각, 요양원 가신 분 생각에 무거운 마음으로 수업을 끝냈다. 절대 반장님에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말기를, 빨리 쾌차하기를 기도하면서.
아파서 결석하는 반장님 작품을 꺼내 보다
이 마을 학교에서 조교님 덕분에 공부하던 90세 김아무개 학생도 작년에 소천하셔서 가슴이 아팠다. 점잖고 공부도 잘하시던 이아무개 학생은 치매로 요양원에 가셨다. 지난번 다른 마을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시던 조아무개 학생이 며칠 앓다가는 갑자기 돌아가셔서 오랫동안 마음이 아팠었다. 조아무개 학생도 혼자 살면서 밭에 고구마, 마늘, 김장 채소 등을 가꾸어 자식들에게 보내주던 분이셨다.
성실한 반장님이 오래 편찮으니 온몸의 기운이 쫙 빠져 아무것도 손에 잡히질 않는다.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가방을 풀고 숙제 검사를 하려다가 반장님이 그동안 해온 숙제를 찾아보았다. 사진으로 저장해뒀던 것을 찾아 읽어볼 생각이다.
반장님은 남편을 일찍 잃고 남매를 혼자 키우다 보니 결단력 있고, 의리도 있고, 결심한 것을 지키려는 의지가 대단하다. 반장님의 작품을 재빠르게 찾았다. 바느질하는 그림에 쓴 글이 눈에 확 띄었다.
"옛날에는 한복도 꼬매고 무명실로 양말도 뜨고, 장갑도 뜨고, 호롱불 앞에서 수도 많이 놓았는데... 지금은 눈도 침침하고 기억력도 히미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서툴지만 정성으로 그린 반장님의 바느질 그림을 보고 있자니 어렸을 때 엄마 생각이 났다. 나는 나이가 들었어도 엄마라고 불렀다. 우리 엄마는 낮에 밭일, 길쌈, 부엌일 하시고 밤에는 항상 바느질하셨다. 엄마 모습이 잠시 섬광처럼 떠올랐다 사라졌다. 자다가 눈뜨면 엄마는 언제나 호롱불 아래서 가족들 입히려고 바느질을 하고 있다.
서툰 그림을 보니 떠오른 엄마 생각
엄마는 일하는 사람이었다. 엄마가 쉬거나 놀고 있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이곳 마을 학교 학생들은 내 엄마처럼 항상 일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그런데 하루 세끼를 죽으로 20여 일째 살고 계시다니, 마음이 편치 않다. 아니 불안하다 못해 가슴이 떨린다.
코로나19가 한창 창궐할 때 시화 작품을 하기로 했었다. 그때 쓴 반장님 작품을 찾아냈다. 근사하다. 다음은 반장님 시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