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탁가정 아이가 그린 그림
은평시민신문
"아이들 키운 얘기, 책으로 써도 몇 권은 나올 거예요."
이현정, 황순미, 황인하. 세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같은 말을 했다. 가정위탁으로 만났지만 같이 먹고 자고 함께 생활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어느 새 또 다른 가족이 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증상을 보이기도 하고 지능발달이 더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 때마다 이들은 아이들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다시 일으켜 세우기를 무수히 반복했다.
"이번 어버이날에 아이가 편지를 썼더라고요. 엄마가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이끌어줘서, 공부를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게 됐다고요. 그래서 이제 하고 싶은 게 생겼대요."
이야기를 전하는 황순미씨의 표정이 환해진다. 예쁜 편지지도 아닌 공책 한 귀퉁이에 적은 짧은 글귀를 받아 들고 "오히려 아이가 잘 버텨주고 따라와 준 덕"이라며 그 성장의 공을 아이에게 돌렸다. 하지만 '책으로 써도 몇 권은 나올 이야기'에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함께 버틴 '어른들의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을 것이란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위탁가정을 바라보는 왜곡된 말과 상처
그야말로 아이들과 '지지고 볶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은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이겨내고 있었지만 위탁부모들이 겪는 어려움은 따로 있었다. 바로 위탁가정을 바라보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과 행정 지원체계의 부재다.
"근데 그거 언제까지 하는 거야, 얼마 받아, 언제 내 보낼 거야 등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아요. 그 때마다 너는 니 새끼 내보내니? 지내다 보면 내 새끼랑 똑같다고 답변했는데 그들이 건네는 질문 자체가 웃기니까 이제는 잘 안 만나게 되더라고요."
황순미씨는 언제부터인가 가정위탁을 이해 못하는 이들하고는 멀어지게 됐다고 했다.
"애쓴다, 고생한다 이런 말 들으려고 시작한 건 아니지만 지금처럼 가정위탁 제도를 운영하면 누가 하려고 나서겠어요?"
이현정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아이들 앞으로 지급되는 수급비가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확인하겠다며 관련 영수증 제출을 요구했다.
"이렇게 영수증 하나하나를 정리해서 제출하는 방식 말고도 아이들 앞으로 나오는 수급비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확인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지 않나요?"
그동안은 아동 전담기관에서 방문해 가정위탁 전반사항을 살폈는데 갑자기 분기별 영수증을 제출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는 지난 2022년 보건복지부가 '수급자 급여관리(사용)실태 점검' 방침을 바꾼데 따른 것이다. 2021년까지는 위탁가정의 위탁부모로 급여 유용 등의 우려가 없다고 시장·군수·구청장이 판단한 경우에는 급여관리 점검 제외 대상이었다.
"처음 가정위탁을 시작했을 때 아이 앞으로 나온 수급비가 50만 원 정도였어요. 수급비 내역을 따로 정리하고 영수증을 첨부하라고 해서 난색을 표했더니 어떻게 썼는지 내역이라도 정리하라고 해서 대충 정리했더니 아이한테 들어가는 돈이 70만 원 이상은 되더라고요. 몇 달 그렇게 정리하니 이제 그만하라고 하더라고요."
10여 년 전, 황순미씨의 경험이다. 대부분의 위탁 가정은 아이 돌봄에 따른 추가 지출을 부담하고 있다. 아이가 주눅 들지 않도록, 최대한 많은 사랑을 주려 애쓰기 때문이다. 영수증 제출 요구가 얼마나 위탁가정의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편적인 사례다.
"아무리 탁상행정이래도 이럴 수가 있나 싶어요. 아이들이 잘 지내고 있나 궁금하면 언제든지 와서 보세요. 학교도 한 번 가보고 선생님도 만나서 급식은 잘 먹는지 물어보고요. 아이 한 명 돌보는데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드는지 모르나요?"
"영수증?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하나 싶어요. 제가 보육원에서 일할 때는 월급 받고 아이 돌보는 게 제 역할이고 당연했지만 아이를 잘 돌보겠다고 하던 일도 그만두고 가정위탁을 시작했는데 무슨 직원한테 업무지시 내리나요? 가정위탁 엄마들이 직원은 아니잖아요?"
이현정, 황순미, 황인하씨는 가정위탁 제도 운영의 모순을 같은 목소리로 지적하고 나섰다. 남들에게 칭찬받기 위해 시작한 가정위탁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아이들 앞으로 나오는 수급비를 부정사용할 것이라고 간주하는 국가태도에 실망했기 때문이다.
그 종이쪼가리 숫자만 맞으면 되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