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신용 스프레이작은 마카펜 크기의 스프레이. 쉽게 분사가 가능하다.
송혜림
퇴근 후 대학생 때 쓰던 가방을 옷장 구석에서 꺼냈다. 잡동사니로 가득 찬 가방 속을 뒤지다 마카펜 크기의 작은 블루 스프레이를 찾아냈다. 몇 년 전, 섬 지역으로 혼자 여행갔을 때 혹시 몰라 온라인으로 구매해 놓았던 호신용품이었다. 물론 한 번도 써 본 적은 없었다, 다행히도.
나는 그 스프레이를 자주 사용하던 가방 끈에 달았다. 유광이라 그런지 빛을 받으면 액세서리처럼 반짝하고 빛났다. 이렇게 조그만한 게 나를 위험에서 구출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 섬찟했다.
지금껏 이 스프레이를 가방에 달지 않은 이유는 혹시나 '예민한 사람'으로 비춰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호신용품을 지니고 다니는 것 자체가 흔치는 않으니 말이다. 또 다른 이유는 역시 '안전 불감증'이었다. '설마 내가 길거리에서 위험한 사람을 만나거나 그런 상황에 처해지게 될까'. 그런 안일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젠 그 어떤 이유를 들어 잣대를 두기엔, 나의 안전할 시간이 더 지연될 뿐이었다. 누군가의 도움을 마냥 기다리기엔, 내가 먼저 나를 지켜야 했다.
오랜 친구들의 단톡방에 스프레이 사진을 올리니 몇몇 친구들의 놀라운 반응이 이어졌다. 한 친구는 어젯밤 삼단봉을 구매했단다. 원래 크기는 두 뼘 정도 되는데 펼치면 곤봉처럼 길어진단다. 하나는 자신이 갖고, 다른 하나는 여동생을 준다고 했다. 사용할 줄은 아냐는 질문에 '그냥 휘두르다 보면 어떻게든 맞지 않을까'란 농담어린 답이 돌아왔다.
다른 친구는 밤새 마땅한 호신용 스프레이를 찾다가 잠들었다고 했다. 구매하는 김에 친구들에게도 선물로 주려고 심사숙고해 고르는 중이라고 했다. 그 친구는 공무원 준비생이었다. 매일 새벽 독서실에서 나와 걷던 고요한 밤길이 좋다던 그녀는 신림역 사건 이후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고 했다.
우리는 괜찮아 보이는 호신용품 판매 페이지를 공유했고, 호신술이 담긴 유튜브 영상들을 함께 시청했다. 사건사고와 관련된 기사는 되도록 공유하지 않으려 애썼다. 공포로 시작해 공포로 끝나는 대화를 멈추고 싶었다.
'안전의 연대'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