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부터 1958년까지 발매된 개인 걸작집 SP음반들.
이준희
<타향(타향살이)>의 고복수, <목포의 눈물>의 이난영, <눈물 젖은 두만강>의 김정구, <연락선은 떠난다>의 장세정, <애수의 소야곡>의 남인수, <화류춘몽>의 이화자, <코스모스 탄식>의 박향림, 그리고 <나그네 설움>의 백년설(<백년설 걸작집>은 제2집까지 발매).
이 '8대 가수'만이 자신의 이름을 내건 걸작집 음반을 낼 수 있었다. 채규엽이나 김용환, 선우일선 등 그들 못지않게 활약한 가수들이 또 여럿 있었으므로 걸작집을 낸 가수들만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걸작집 8대 가수들이 1930~40년대 대중음악계를 선도했다는 것은 누구라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인기의 척도로 보기에 충분한 걸작집 음반이기는 하나, 어쩔 수 없는 한계도 물론 있다. 1940년에 발매된 <남인수 걸작집>에는 당연히 1942년 작품 <낙화유수>가 수록될 수 없었고, 오케레코드에서 제작한 <박향림 걸작집>이었기에 콜럼비아레코드에서 발표된 <오빠는 풍각쟁이>도 박향림의 대표작이긴 하나 수록될 수 없었다.
그래도 걸작집에 포함된 노래들을 하나하나 듣다 보면 당대 대중음악의 정수를 맛보기에 부족함이 없다. 더구나 8대 가수 걸작집은 노래 사이사이에 흥미로운 대사를 넣어 짧은 음악극 한 편을 보는 듯한 효과도 연출하고 있다. 대사를 맡은 이들은 그 당시 대중의 스타로 역시 각광을 받았던 유명 배우나 변사였는데, <남인수 걸작집>에는 이례적으로 일본 배우 도도로키 유키코가 참여하기도 했다.
이처럼 중요한 의미와 흥미로운 내용이 담긴 걸작집 음반이지만, 그러나 해방 이후에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SP음반이 1964년까지 계속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걸작집으로 발매된 것은 1958년 <김용만 걸작집> 하나가 확인될 뿐이다. 1957년에 열린 은퇴공연을 기념해 만들어진 <고복수 은퇴공연 노래>를 사실상 걸작집으로 볼 수 있기도 하나, 포함을 시켜 본다 해도 두 가지에 그칠 뿐이다.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SP음반으로 제작된 개인 걸작집 음반은 따라서 총 열두 가지가 되는 셈인데, 단편적으로 소개된 경우는 있었지만 그 모두가 한데 모여 공개된 적은 없었다. 아무래도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발견 자체가 쉽지 않은 희귀 음반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번에 그 전모를 확인할 수 있는 복각 CD가 만들어져, 애호가와 연구자들이 자료 갈증을 풀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