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링서비스
정누리
웨이팅의 '웨'자도 피했던 내가 모든 맛집을 섭렵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로 태블릿 예약 서비스가 크게 퍼졌다. 어떤 식당을 가도 문 앞에 예약 태블릿이 있다. 이곳에 휴대폰 번호를 입력하면 알아서 순번이 되었을 때 알람을 보내준다.
기다림은 이제 정적이 아니라 동적이다. 나는 '최적의 웨이팅 방문 코스'를 짠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기 위해 지도 어플을 켠다. 주변 상점이나 명소를 들르기도 하고, 카페에 앉아 시간도 때운다. 심지어 숙소를 잡아 눈을 붙이고 나오기도 한다.
가게들도 대기자를 위해 주변에 포토부스나 테마거리를 조성하는 등 즐길거리를 만든다. 이것이 요즘 '기다림'의 형태다. 웨이팅의 결과가 매번 만족스럽지는 않다. 오히려 동네 한적한 음식점이 더 맛있을 때도 많다. 그러나 아무나 쉽게 시도하지 못하는 핫플레이스를 다녀왔다는 점이 중요하다. 문득 궁금한 점이 생긴다. 이 대기줄에는 왜 중장년들은 보이지 않을까?
며칠 전 부모님과 휴가로 속초 리조트를 간 적이 있다. 체크인 시간에 딱 맞춰 들어간 탓인지, 대기자가 바글바글하다. 시장통에 혼란스러워하는 부모님을 뒤로 하고, 예약 태블릿을 찾는다. 휴대폰 번호를 입력한다.
"우리 (체크인) 대기번호 30번이래. 1시간 정도 걸릴 것같아."
아빠가 묻는다.
"1시간 동안 여기 서 있으면 돼?"
"아니. 돌아다니다 오면 되지."
"그랬다가 순서 넘어가면 어떡해?"
"휴대폰으로 알려준다잖아요."
엄마가 아빠 등을 툭 친다. 그들에게 움직이는 기다림은 낯설다. 비단 내 부모님만의 얘기가 아니다.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으면 계산대 줄도 격차가 느껴진다. 일반 계산대 줄에는 중장년이 서 있다. 끝없이 줄이 이어진다. 그러나 청년들은 추월차로를 달리듯 셀프계산대로 간다.
머리로 하는 기다림이 낯선 중장년들
인기 있는 맛집에 중장년들은 보이지 않는다. 유명 백화점 푸드코트는 주말엔 아예 스마트폰으로 원격줄서기만 가능해서, 자유로이 먹을 수 있는 곳이 50개 중 10곳이 채 되지 않는다.
기다림은 엉덩이로 하는 것이라 여겼는데, 이젠 머리로 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아이러니한 것은 인내심은 그만큼 줄어들고 있다. 머리가 빨라진 만큼 엉덩이는 가벼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