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밖 풍경거실 창의 절반은 하늘이, 나머지 절반은 다홍색 지붕의 학교와 숲이 채웠다.
김현진
살고 있던 동네라 지형을 알아 집의 베란다에서 보이는 경치가 꽤 근사할 거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단지의 가장자리에 있으면서 층수가 높아 하늘이 훤히 보였다. 거실 창의 절반은 하늘이, 나머지 절반은 다홍색 지붕의 학교와 숲이 채웠다.
그걸 배경으로 두는 삶이라면 나쁘지 않을 거라 믿었다. 내부가 낡아 계약을 하고도 걱정이 많던 남편에게 남서향이라 저녁에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아름다울 거라고 여러 번 이야기했다. 집에 들어가기 전부터 해가 저무는 풍경을 감상하는 생활을 상상했다.
이사를 하고 보니 베란다 아래로 생각지 못한 작은 공원이 있었다. 공원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크기라 오솔길이라 하는 게 더 적당하려나. 그래도 위에서 내려다보면 나무가 우거져 커다란 숲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해가 서편으로 넘어갈 때면 바람이 숲을 쓸고 가는데 그때마다 푸른 잎사귀들이 물결치듯 일렁였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고 푸른 융단 위에 둥실 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창백한 아파트 건물 사이에 있지만 집에 들어와 창 밖을 보는 순간 숲에 왔다는 착각이 들었다.
봄이면 작은 숲에 여린 초록의 잎사귀들이 돋아나 싱그러운 바람을 일으켰고 그 너머로 보이는 산책로를 따라 벚꽃이 만발했다. 여름이면 작은 숲이 깊고 짙은 초록의 바다로 무성해졌다. 가을에는 울긋불긋하게 물이 들고 겨울에는 검게 빈 숲에 흰 눈이 쌓였다. 그곳을 나만의 작은 숲이라 불렀다.
봄날이면 베란다에 테이블을 펼치고 피크닉 나온 사람들처럼 저녁을 먹었고 여름이면 간이 풀장을 설치해 물놀이를 했다. 아이와 둘이 창 앞에 나란히 앉아 저녁노을로 시시각각 물들어가는 하늘을 지켜보거나 흘러가는 구름을 헤아렸다.
창 밖의 풍경과 베란다 아래 작은 숲은 애초에 바랐던 것 이상으로 삶을 바꾸어 놓았다. 매일 해 지는 시간을 기다렸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늘을 챙겨 보았으니 그 집에 살던 2년은 자연과 계절의 흐름과 가장 밀착되어 있었다.
선택 둘, 책과 도서관과 가까이 있는 삶
거기 살면서 새롭게 알게 된 도서관이 '어울림 도서관'이다. 집에서 더 가까운 도서관을 찾았을 뿐인데 이전에 다니던 곳보다 시설이 좋고 더 다양한 책을 갖추고 있어 이런 행운이 또 없다고 생각했다. 삶이라는 원에서 창 밖 풍경이 원주라면 책은 원점과 같은 존재였으니까.
집에 책이 많아도 책에 대한 욕구는 끝이 없었다. 하지만 이사를 하며 책이 큰 짐이라는 걸 알게 된 후 구매를 자제하게 되었고 가능하다면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게다가 도서관 희망도서 신청 서비스를 이용하면 한 달에 5권까지 신간 도서를 받아볼 수 있었다.
작년 여름에는 우연히 '치유하는 글쓰기'라는 도서관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마침 3년 가까이 이어온 매일 글쓰기가 지지부진한 상태였고 글은 써서 뭐 하나 하는 회의에 젖어 있었다. 혼자 쓰는 일이 답답하던 차, 누군가와 함께 쓰면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싶어 냉큼 신청했다.
도서관 글쓰기 모임을 통해 글쓰기 동료이자 내 글의 소중한 독자를 얻었다. 도서관 프로그램이 종료되고도 멤버들과 동아리를 결성해 글쓰기를 지속했고 모두 함께 의기투합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데뷔했다. 세대는 다르지만 삶의 사소한 순간에 감응하고 타인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너른 마음을 지닌 사람들 덕분에 글쓰기는 중단 없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