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보장 전략회의 입장하는 윤석열 대통령윤석열 대통령이 5월 3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사회보장 전략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대통령실
지난 5월 31일 '사회보장 전략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사회보장 서비스를 시장화, 산업화하고 경쟁 체제를 도입하겠다"며 현금복지는 줄이고 '약자복지'를 강화하고 서비스를 고도화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이 복지 돌봄의 당사자들을 '약자'로 지칭하면서 노골적으로 낙인찍는 언어를 사용했다는 점은 매우 우려스럽다. 이 정부의 복지 철학과 인식 수준을 고스란히 드러냈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OECD 국가들 중 대표적인 '저부담-저복지' 국가이다. 2021년 국회예산정책처에서 발표한 'OECD 주요국의 공공사회복지 지출 현황'에 따르면, 한국은 GDP 대비 공공사회복지 지출 비율(2019년)이 12.2%로 OECD 평균인 20.0%에 훨씬 못 미친다.
한국의 복지는 공공보다 민간의 공급 비중이 훨씬 높다는 점에서 이미 '시장화'되어 있다. 노인장기요양서비스를 제공하는 요양기관의 99.3%는 민간이며, 국공립 비중은 고작 0.7%에 불과하다. 어린이집도 민간 73.7%, 국공립 16.4%로 민간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이미 더 시장화할 수 없을 정도로 시장화되어 있는 마당에, 오히려 취약한 공공성이 큰 문제로 제기되는 마당에 더 무엇을 시장화하겠다는 말인가?
남은 것은 서비스의 고도화, 규모화이다. 이러한 맥락은 거대자본들이 노인요양산업에 뛰어들거나 뛰어들 준비를 하고 이는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이는 인구규모가 가장 큰 베이비붐 세대(1955년~1963년)의 은퇴 즉, 어느 정도 복지 구매력을 갖춘 사회서비스 수요자의 대거 출현과도 맞물린다.
진짜 걱정스러운 것은 그 다음이다. 시장화, 산업화는 필연적으로 양극화를 부추긴다. 복지의 구매력을 갖춘 사람들이 시장에서 더 나은 서비스를 구매하게 될 것이다. 복지에도 격차와 계급이 생긴다면 그것을 '복지'라고 부를 수 있을까? 복지는 사회위험에 대처하고 보편적이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가 책임져야 할 '사회안전망'인데 말이다.
이제, 복지 정치를 말할 시간
코로나 이후 복지국가의 재편은 세계적 흐름이다. 지속불가능한 사회에서 지속가능한 사회로의 전환, 그 핵심에는 '복지'가 있다. 새로운 국가의 비전과 운영 철학을 바탕으로 복지국가를 재구조화하지 않으면 안된다. 제대로 된 국가의 역할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한 '전환의 시기'이다.
"새로운 복지국가에서는 더는 간병살인이란 비극이 없다. 가족의 돌봄이 삶과 생활의 위기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복지국가에서는 대기업 정규직만 보호받는 세상이 아니다. 국민 누구나 자신의 권리로 기본적인 복지와 서비스를 보장받기 때문이다. 새로운 복지국가에서는 상속 자산이 없어도 공정한 기회를 갖고 생애 주기에서 다양한 시도를 벌일 수 있다. 실패해도 패자 부활이 가능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복지국가에서는 노후 걱정이 없다. 공적 소득보장체계가 마련돼 기본적인 생활은 보장받기 때문이다." (책 23쪽)
불평등이 고착화되고 격차가 대물림되는 사회는 미래지향적이지 않다. 돌봄이 시장에서 서비스를 구매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만 허용된다면,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의 노동이 천대받고 착취당하는 구조라면, 국가시스템이 돌봄의 차별과 배제 문제를 평등하고 정의로운 관점에서 다루지 못한다면, 그 사회는 민주국가도 복지국가도 아니다. 극소수만 행복하고 대다수는 고통받는 '압정형 사회'로 가지 않기 위해 새로운 복지국가의 구축은 미룰 수 없는 절체절명의 과제이다.
이를 위해서는 노골적인 복지의 축소와 양극화, 사회안전망의 붕괴를 부추기는 윤석열 정부의 파행을 넘어서야 한다. 다시, 정치의 시간이다. 대한민국 복지국가의 오늘에 대해 냉정히 따져 물을 질문의 시간이다.
성공한 나라 불안한 시민 - 대전환 시대, 한국 복지국가의 새판 짜기
이태수, 이창곤, 윤홍식, 김진석, 남기철, 신진욱, 반가운 (지은이),
헤이북스,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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