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 하나고 전경원 교사.
권우성
전 교사는 중·고등학교 교사로서 박사 학위까지 갖고 있고, 대학교의 입학사정관도 지냈으며, 국어교과서 집필진까지 역임했다. 2010년 설립된 하나고의 '개국공신' 중 하나로까지 불렸고, 하나고의 교가를 작사하고, '자랑스러운 하나고인(人)'으로 선정되어 우수 교직원 표창까지 받아 승승장구하던 그가 가시밭길을 걷게 된 '그날, 그 사건'에 등장하는 인물 중 하나가 바로 이동관이다.
당시 하나고에는 이명박 정부 실세 중 하나로 불렸던 이동관(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내정자) 아들이 다녔다. 그 아들에 의한 심각한 학교 폭력이 있었는데 사건이 축소·은폐되었고 그 과정에 아버지 이동관의 역할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전 교사는 이동관 아들 학폭 축소와 함께 하나고가 남학생을 더 뽑기 위하여 여학생들의 성적을 조작한 입시 비리 의혹 등을 제기했다. 그후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끔찍한 교권 침해
전 교사에 따르면 어제까지 호형호제하던 동료 교사들은 같이 앉아 밥 먹는 것까지 거부해 혼자서 식당이 아닌 휴게실에서 도시락을 먹어야 했다. 어느 교사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학교 경영자들은 갖은 방법으로 그를 괴롭혔다.
그 전까지 항상 5점 만점 가깝게 받던 교원평가의 동료 평가 항목에서 갑자기 별점 테러가 쏟아졌다. 교사들이 집단적으로 최하 점수인 1점을 주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래도 이 정도는 참을만 했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학부모들의 교권 침해였다.
"전경원 너는 선생님도 아니고 개자식이다. 교직에서 떠나라!!!" (2015년 9월.)라는 내용을 담은 이메일을 비롯하여 익명의 학부모들이 욕설과 비난을 쏟아냈다. "당신 자식이 이 학교를 다녔어도 그렇게 '어이없는 정의'를 외쳤겠느냐", "검은 옷으로 차려입고 침묵 시위를 하자"며 학부모들이 집단으로 게시판과 채팅창에 그를 비난하는 메시지를 쏟아부었다.
이런 사이버 테러에 그치지 않았다. 어느 날은 수백명의 학부모들이 집회를 열고 전경원 교사에게 학교를 떠날 것을 요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하여 학교에 전달했다. 이들은 "내부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외부로 끌고 가서 학교 이미지를 땅에 떨어뜨린 것이 합당한지 말하라"고 요구하고 "원서를 쓰고 있는 4기 학생들(고3)에게 한 번이라도 미안한 마음 가져본 적이 있는가?"라며 물었다. 비리를 제보한 교사에게 학생들의 입시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니 노골적으로 학교를 떠날 것을 요구한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어느 날 "검은 옷으로 차려입고 침묵 시위를 하자"는 게시판의 제안대로 정말로 10명에 가까운 학부모라는 사람들이 검은 옷을 상복처럼 입고 학교로 찾아왔다. 교문을 지나 현관을 지나 교무실까지 집단으로 들어왔다.
교사들의 업무 공간이고, 학생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교무실에서 전경원 선생님의 자리를 'ㄷ'자로 둘러싸고 검은 상복을 입고 시위를 한 것이다. 전경원 교사가 근무하는 2학년 교무실의 자리 주변 벽과 기둥 여기저기에 "하나고 교사 전경원 퇴진", "전경원은 물러가라.", "전경원 교사의 수업을 거부한다" 등의 검은색 피켓을 붙여놓았다.
교장, 교감을 비롯하여 어느 교사도, 어느 직원도 학부모들의 이런 행동을 제지하지 않았다. 한 번도 아니고 어떻게 알았는지 전경원 교사의 시간표까지 미리 파악하고 있었다. 전경원 선생님이 교무실에 나타나면 "전경원은 학교를 즉시 떠나라" 등의 내용이 담긴 손팻말을 들고 나타나 시위를 한 후, 전경원 교사가 교무실을 떠나면 사라져서 학교 어딘가에 있다가 전 교사가 교무실로 돌아오면 다시 나타나 상복 피켓 시위를 이어갔다(관련기사:
부정 폭로 교사에 날아든 메일 '넌 선생도 아니고 개XX, 떠나라' https://omn.kr/fb2o).
해도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에 전경원 교사는 학교 최고 책임자들을 찾아갔다. 그런데, 당시 교감이 했던 말을 그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전 교사가 "이건 너무하지 않느냐? 학부모도 자식 걱정하여 시위를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래도 학교 앞 정도여야지 교사의 업무 공간이고, 학생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교무실에서 이러는 것을 방치하는 것은 너무한 거 아니냐? 이건 교권침해다"라고 하니 교감은 "선생님, 힘드신가 봐요? 선생님 때문에 우리도 힘들어요"라며 비아냥 거렸다. 물론, 교감을 비롯하여 교장, 부장 등 어느 누구도,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일부 학부모들은 익명으로 인터넷 사이트에 전경원 교사를 비방하는 허위사실들을 무더기로 작성하여 벌금형을 받기도 했다. 익명으로 작성한 허위 비방 글을 쓴 이들이 대부분 이 학교 학부모들이라는 사실이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학부모들 역시 교원평가의 학부모 평가 항목에서 집단으로 1점을 주는 '별점 테러'를 가했다. 일부 학부모들이 주도하여 학급 학부모 전원이 담임 교체를 원한다는 서명을 받았다면서 이를 근거로 학교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담임에서도 잘라버렸다.
가장 심각한 교권 침해는 이런 싸움에 학생들을 동원한 것이다. 학교에서는 이 사건이 불거지자 전경원 교사가 수업을 마치고 퇴근한 후 기숙사에 있던 학생들을 불러서 "전경원 선생님 수업 받은 애들 다 모여라. 오늘 무슨 얘기 했는지 써라"라면서 A4 용지를 나누어주고 쓰게 한 것이다.
사실상 학교가 학생들을 프락치로 이용한 것이고, 이를 통하여 교사를 사찰한 것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힘들다. 그래도 전경원 교사는 정신과 상담을 받으면서까지 이를 악물고 버티었다. 그를 버티게 한 가장 큰 힘은 교육자적 양심이고, 배우자를 비롯한 가족의 지지였으며, 또 '침묵하지만 지지하는' 학생들이었다.
학교에서는 흔히 교원평가로 알려진 교원능력평가라는 것을 해마다 한다. 5점 만점인데 이 사건 이전에 전경원 교사는 언제나 5점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고 하는데, 그 때 처음 낮은 평가 점수를 받았다. 앞서 밝힌 것처럼, 동료교사 평가와 학부모 평가에서 별점 테러가 쏟아져 최하 점수인 1점대를 기록했다.
그나마 학생 평가에서는 평균 3점대가 나왔다. 자신들의 입시에 불이익이 있다면 가장 크게 걱정해야 할 학생들이 오히려 드러나지 않게 그를 지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학교와 학부모의 집단적 별점 테러 상황에서 학생들은 겉으로 보기에 학교와 학부모들에게 일방적으로 동조하는 듯한 분위기였지만, 그래도 많은 학생들이 전경원 교사의 편에 서주었던 것이다. 전경원 교사는 지금도 그 때 그 학생들에게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다"는 감정을 간직하고 있다.
이런 최악의 교권침해 상황에서 학교는 교권을 지켜주기 위해서 어떻게 했을까?"아무 것도 안 했다. 아니 교권을 지켜주기는커녕 학부모들보다 앞장 서서 교권침해를 자행했다"고 전경원 교사는 한숨을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