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전 서울 용산구 주한 미얀마대사관에서 만난 로힝야 난민 모하메드 이삭(57)이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복건우
"가족들이 흩어진 지 6년이다. 미얀마 군부의 사퇴와 유엔(UN)의 중재가 필요하다."
미얀마군의 로힝야족 학살 사태가 발생한 지 6년이 지났다.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에 모여 살던 로힝야족은 140만 명, 그중 75만 명이 탄압을 피해 미얀마를 떠났다. 이들은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난민캠프에서 현재 망명 상태로 살고 있지만, 지금도 본인과 가족들의 안전한 귀환을 꿈꾼다.
25일 오전 서울 용산구 주한 미얀마대사관에서 만난 로힝야 난민 모하메드 이삭(57)은 "아버지의 아버지까지 미얀마에서 살아온 역사가 있는데 군부가 우리를 쫓아내고 시민권까지 빼앗았다"며 "미얀마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유엔과 군부가 우리의 인권과 안전을 먼저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얀마·방글라데시로 흩어진 가족들... "군부의 제노사이드"
이삭은 2000년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앞서 그는 1988년 '8888항쟁(미얀마 대규모 민주화 운동)'을 하다 미얀마 경찰에 체포됐다. 군부의 탄압에 위협을 느낀 그는 미얀마에서 방글라데시 치타공으로 도망을 쳤다. 12년 가까이 그곳에서 로힝야 난민들을 돌보고 공부를 가르쳤다.
이후 방글라데시 정부가 로힝야족을 다시 미얀마로 돌려보내려 하자, 이삭은 인도 뭄바이를 거쳐 부산에 밀입국했다. 2006년이 돼서야 이삭은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이삭은 2017년 8월 25일을 떠올렸다. 그날 미얀마 군부는 라카인주에 모여 사는 로힝야족에게 총부리를 겨눴다. 집을 태우고 아이를 죽이고 여성을 성폭행했다. 민간 건물만 총 6만 채가 사라졌고 2만 5000명이 숨졌다. 불교 국가 미얀마에서 이슬람교를 믿는 소수민족 로힝야는 손쉽게 증오의 대상이 됐다. 이삭은 이러한 군부의 행태를 "제노사이드(집단학살)"라고 표현했다.
미얀마 라카인주에 남아 있던 이삭의 가족들도 큰 피해를 입었다. 가족·친척 100여 명 가운데 15명 정도만 라카인주에 남았고, 아버지와 친형 등 나머지는 방글라데시로 피신했다.
당시 미얀마 접경 지역인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엔 대규모 난민촌이 만들어졌는데, 그의 가족을 포함해 100만 명이 넘는 로힝야족은 지금도 이곳에서 열악하게 생활하고 있다. 그는 "미얀마든 방글라데시든 로힝야가 살아가기는 여전히 힘들다. 이때의 기억 때문에 지금도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21년 2월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으면서 미얀마로 들어오는 인도주의적 지원을 모두 차단했다. 미얀마에 남아 있는 로힝야족은 앞으로 더욱 고립될 처지에 놓였다. 유엔은 로힝야 사태를 두고 '전쟁범죄', '반인도주의적 범죄', '제노사이드'라고 지적하지만, 미얀마 군부는 여전히 그 책임을 부인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이삭은 "미얀마 군부가 국민검증카드(National Verification Card, NVC 카드)를 발급해줄 순 있어도 우리를 시민으로 인정할 순 없다고 하는데, 그건 차별적인 등록증이다"라며 "로힝야의 안전한 귀환을 위해서는 군부의 사퇴와 유엔의 중재가 필요하다. 차별받지 않고 시민권이 보장되는 날이 빨리 왔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