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밀 한양대학교 교수
주간함양
함양을 대표하는 위인을 꼽으라면 연암 박지원 선생과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이름이 거론되곤 한다. 8월 26일 오후 행복안의봄날센터에서 열린 안의향교 개교 550주년 기념 학술 심포지엄에서는 앞서 말한 두 위인과 안의와의 관계에 대해 공부하는 의미 있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이날 학술 심포지엄에는 관련 최고 전문가인 박수밀 한양대학교 교수와 정출헌 부산대학교 교수가 참여해 안의의 역사를 다시 한번 조명했다.
먼저 박수밀 교수의 '연암의 안의 현감 행정과 문학 세계'를 주제로 한 강연으로 학술 심포지엄의 시작을 알렸다.
박 교수는 "대학생 시절 연암 박지원의 문학에 매료돼 고전 문학의 길을 걷게 됐고 30여 년 가까이 연암 박지원 선생을 연구하고 있다"며 "연암 박지원 선생은 여러분이 지금 머릿속에 생각하는 것 훨씬 이상으로 대단하신 분이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박 교수는 연암 박지원 선생을 "진부한 문체 상투적인 글을 거부하고 새로운 글쓰기를 시도했던 독보적인 문장가임과 동시에 정해진 길, 정해진 틀에서 일탈해 새로운 세계를 찾아 나선 경계인"이라고 평가하면서 그 바탕에 있는 연암 선생의 평등 정신과 우울한 내면의 세계를 강조했다.
현감 시절 활동도 주목했다. 박 교수는 연암 박지원 선생은 안의 현감 시절 40여 편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고 밝히며 벼슬살이 기간 동안 가장 많은 문학작품을 창작한 시기가 안의 현감 시절이라고 짚었다. 그 중엔 <열녀함양박씨전>, <홍범우익서>와 같은 문제적 작품도 있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안의 현감에서 목민관으로 활동하면서 평소 사상인 이용후생과 북학을 실천하는 장으로 활용한 점도 강조하면서 하나의 사례로 청나라에서 배운 물레방아를 안의현 안심 마을에 우리나라에서 처음 설치한 점을 조명했다.
박 교수는 "곧 연암에게 안의현은 그가 그동안 모색해온 실학과 북학의 정신을 실천하는 중요한 공간이 되었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지역민들이 실천 정신과 함께 세계적인 수준의 문장가라고 불려도 될 연암 박지원을 보유한 지역이다라고 하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뒤이어 정출헌 부산대 교수의 '점필재 김종직의 함양군수 시절과 안의향교' 강연이 진행됐다.
정 교수는 김종직 선생이 조정의 방침에 호응해 향교를 일으키고 교육의 규범을 바로 잡는 데 힘썼고 그런 노력을 지역에서도 실현시킨 점을 주목했다.
정 교수는 "김종직 선생은 당시 조정의 방침에 적극 호응해 향교를 일으키거나 교육의 규범을 바로잡는 작업을 적극 실천하고 지원했다"며 "중앙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명전환의 과정을 충분히 목도했고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에 내려와 지방관으로서 그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다"고 했다. 안의향교의 설립은 문명전환의 바람이 중앙에서 함양군, 함양군에서 다시 안의현까지 몰아치고 있던 성종 초년의 상황을 보여주는 증거에 다름없다며 지역에서 그런 변화를 주도하는 데 김종직 선생이 큰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함양군수로 있는 동안 지역의 제자를 길러낸 점도 높이 평가했다.
정 교수는 "실제로 김종직 선생은 함양군수로 있는 동안 참으로 많은 지역의 제자들을 길러냈다. <점필재집>에 실려 있는 시문을 통해 확인되는 인물만도 20명에 달한다. 조위·조신 형제, 강백진·강중진 형제, 김혼, 표연말 등 젊은 제자를 비롯해 박맹지, 임정숙, 정세륭, 정여창, 김굉필, 곽승화와 같은 함양과 그 인근 지역 인물들과 사제의 관계를 맺으며 새로운 학풍을 진작시켜 나갔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안의향교 550주년 기념행사에서는 제례행사와 학술 심포지엄 외에도 명인에게 배우는 서화·서예, 헌관 및 유복 입기 등의 다양한 체험행사와 풍물 공연, 섹소폰 연주회, 지역별 노래자랑 등 공연행사가 열리면서 지역민을 비롯한 외부 방문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고 3일간의 행사를 성황리에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