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교원의 학생생활지도 고시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이초 선생님의 죽음으로 시작된 교사들의 직접행동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자 교육부는 부랴부랴 학생생활지도와 관련한 고시안을 내놓았다. 대책이라고 내놓은 고시를 학교에서 환영하기 어려운 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이런 문제들로 학교에서 이 일을 직접 처리해야하는 관련 부장들의 하소연이 온갖 커뮤니티에서 공유되고 있는 상황이다.
9월 1일자 고시는 곧바로 시행되어, 학교의 모든 규정, 규칙을 고시에 맞추어 빠르게 개정해야 한다. (관련 기사:
교육부 '학생·휴대전화 분리' 고시 발표... "인권조례 개정 권고",
https://omn.kr/258sq)
그러나 학교에서 만들어 운영되는 학칙이나 학교생활인권규정 등은 공동체 구성원들의 민주적 참여 절차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개정이나 제정의 절차가 까다롭고 번거로우며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학생, 보호자, 교사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개정심의위원회에서 심의 절차를 거친 뒤 학교운영위를 거쳐 교장이 결재하는 것은 말이 쉽지, 각각의 절차를 거치기 위해 담당자가 진행해야할 일은 수업과 병행하기에 불가능한 수준의 '일 폭탄'이 된다.
게다가 경기도의 각 학교는 이미 상반기에 학교생활인권규정의 점검을 교육청으로부터 받았고, 그 결과 수정 보완 의견이 내려온 학교들은 위와 같은 과정을 거쳐 이미 학교생활인권규정의 개정을 마친 터였다. 이 일을 다시 처음부터 해야하는 것이다.
고시안 적용, 쉽지 않은 이유
담당자가 마음을 먹고 일을 진행시키려고 해도 걸리는 문제들이 있다. 고시의 12조 6항, 교육활동을 방해하는 학생을 분리하는 절차와 과정, 학생의 학습지원 방법 등을 학칙으로 정하라는 것이다.
분리 장소를 정하는 것부터 문제다. 빈 교실이 남아도는 학교라면 모르겠지만, 교사들의 연구실조차 갖추어지지 않은 학교들에서는 이 공간을 찾는 것부터 문제다. 자연히 상담실, 교무실, 교장실 등을 거론하게 되고 당사자들과의 불편한 설전이 오가게 된다.
운 좋게 장소를 결정했다고 해도, 누가 아이를 돌볼 것인가의 문제가 발생한다.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하려면 학습행위 가능한 자격증 소지자가 있어야 할텐데, 수업에 매여있지 않은 자격증 소지자는 교장, 교감뿐이니 이들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참여 의사가 중요하지만, 불행하게도 관리자들에게 그와 같은 적극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또한 학교의 많은 일들은 관리자들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관리자들의 권한과 책임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으면, 민주적 과정을 통해 관리자들에게 실질적인 업무를 부여하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러나 또한 운 좋게 학생과 교사들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교육적 마인드 최고치의 관리자를 만났다면 이번에는 그 관리자가 분리조치를 위해 교실로 와줄 수 있을 것인지, 학생의 보호자에게 전화를 하는 연락마저 담당해줄 것인지까지도 부탁해야 한다. 이런 과정까지 무탈하게 결정될 운 좋은 학교는 대한민국에 몇 개 없다.
이뿐인가. 수업 중 학생의 물품을 따로 분리하여 보관하라는 고시안을 위해서는 물품 분리 보관 규정을 만들고, 물품 관리 대장도 적으라는데, 이 일은 또 누가 하라는 것인가. 수업이 도저히 진행되지 않는 급박한 상황에서 이 모든 과정의 일들은 수업 당사자인 교사들에게 강요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니 이것이 과연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고시인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 대책이 되기 위해서는 그 대책이 실효성이 있는가를 판단해야 하고,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될 것인가 고민하는 것은 상식이다. 고시안을 만드는 과정에 집회를 준비한 현장 교사들 서너명만 포함되었더라면 이런 '일 폭탄 천덕꾸러기' 고시안이 탄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력과 재정 지원 없고, 관리자의 책임도 명시되지 않은 고시안은 일만 많아지는 종이쪼가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교사들 '어르기'에만 급급하다면, 더욱 분노할 수밖에
30만의 교사가 거리로 나온 것은, 단순한 서명운동에 참여한 것과 그 무게가 다르다.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교육부는, 학교를 중심으로 한 공교육 전반에 흐르는 중차대한 문제로 인식하고 충분한 의견수렴과 현장 연구를 거쳐 근본적인 해결의 가닥을 잡아가야 한다.
그러나 교육부는 서이초 교사의 49재를 기념한 '공교육 멈춤의 날'에 참여하려는 교사들에게 파면, 해임과 같은 무시무시한 징계협박을 하다가 그 기세가 누그러지기는 커녕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되자 당일 오전 '징계는 없다'고 했다.
학생들의 생활지도와 관련해서 현장의 의견을 충분히 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산과 지원, 기존 체제의 흔들림은 전혀 없는 말뿐인 고시안을 번갯불에 콩볶듯 만들어 일거리만 늘려놓았다.
또한 올해는 '교원평가 없다, 담임수당 올린다'는 말도 흘러나오고 있다. 교원평가가 문제라면 정해진 과정을 거쳐 고치거나 없애야지, 우는 아이 젖 주는 식으로 교사들을 어르고 넘기려는 식의 행보는 교사들을 더욱 분노하게 한다는 것을 교육부는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문제가 곪아 터졌다면, 원인을 살펴 근원적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교사들은 인내에 익숙한 사람들이며, 법과 질서를 중요하게 여기도록 훈련된 집단이다. 그런 교사들에게 땜빵하듯, 조련하듯 이번 문제를 덮고 지나가려한다면, 아마 가까운 시간 안에 더 큰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교사들의 집단 우울과 슬픔은 분노와 교육과 직업에 대한 포기로, 그리고 공교육 체계의 어마어마한 혼란과 붕괴로 이어질 것이다.
교육부의 절망적인 행보 앞에 교사들은 도대체 얼마나 더 인내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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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의 학생생활지도 고시안, 교사들이 환영하기 어려웠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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