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에서 연기가 오른다.골짜기에 자리잡고 살아가는 전원에서 만난 풍경이다. 오래전의 기억을 되살려주는 굴뚝에서 나는 연기, 여기에 초가지붕이었으면 하는 어리석은 아쉬움을 갖기도 한다.
박희종
한 무리 사람들이 마을 앞을 지나간다. 두루마기를 입고 10여 명이 이웃집으로 차례를 지내러 가는 모습이다. 같은 성씨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동네의 명절 풍경이었다. 며칠 전부터 동네에서 볼 수 있는 명절 분위기, 어른들은 음식을 준비했고 타지로 나간 사람들이 고향을 찾았다. 가끔 오가는 노선버스가 한 무더기의 사람을 쏟아 놓으면 갈길 바쁜 사람들이 서둘러 발길을 옮겼다. 번듯한 옷차림에 양손에는 선물 꾸러미가 들려 있었다.
맨발로 뛰어나와 자식들을 반기던 부모들이 초가지붕을 맞대고 살아가는 시골집이다. 초가지붕을 뚫고 올라온 굴뚝에선 며칠 전부터 연기가 피어올랐다. 추석을 맞이하기 위한 어머니들의 손길이 바빠서다. 송편을 빚어야 했고, 씨암탉닭을 잡아야 했으며 갖가지 제물을 준비해야 했다. 손님을 위한 술을 빚어야 했고 든든한 안주거리도 만들어야 했다. 오일장엔 피와 땀이 절은 고추를 팔아 자식들 옷가지도 준 해 놓았다.
세월 따라 명절이 변했다
한참의 세월이 흘렀고 삶의 방식이 변한 추석, 긴 연휴기간에 인천 공항은 발 디딜 틈이 없다. 전국 유명지의 펜션과 호텔 예약은 이미 끝났고, 긴 추석연휴는 휴식을 위한 기간으로 변했다. 가족단위의 해외여행이 오래전에 계획되었고, 해외여행 대열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은 국내 여행지에 잠자리를 마련한 지 오래되었다. 차례상도 펜션에서 간단하게 차려지고 성묘는 벌초를 하면서 벌써 한지 오래됐다.
언론에서 듣기만 하던 일을 딸네가 감행한 것이다. 추석 연휴를 이용해 해외여행을 떠난 것이다. 벌써부터 여행을 계획했고 아내는 용돈도 건넸다는 말에 그러려니 했다. 힘들게 살아온 사람들이 찾아온 연휴를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해외를 여행하고 국내 유명관광지로 떠나 일상에 찌든 찌꺼기를 씻어 낸다는데 누구 뭐라 할 수 있을까? 오래전의 이야기는 소리 없이 사라졌고, 다른 세대가 같이 어울릴 수 없는 세월이 되었다. 조율이시가 어떻고, 좌포우혜가 이런 것이라는 말은 꺼내기도 어려운 시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