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스트롱' 파티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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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의 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
참사 이후, 이태원에서 활동하던 클럽 DJ들은 참사를 기억하기 위해 '이태원 스트롱'이라는 파티를 열기도 했다. 보스턴 마라톤 참사 이후, 보스턴 시민들은 '보스턴 스트롱'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폭탄 테러가 있고 나서도 여전히 보스턴이라는 도시는 건재하고, 우리는 잘 이겨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 보스톤 스트롱의 슬로건을 따라 파티 이름을 짓고, 파티 수익금의 일부를 이태원 참사의 유족이나 상인회에 기부하기로 했다. 그러나 참사가 일어난 곳에서 파티를 여는 것이 옳은 일일까. 기획자, 클럽 DJ들 모두 고민에 잠겼다. 그러한 고민을 잠재운 것은, '파티도 추모의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추모의 방식은 다양할 수 있는 거니까요. 노래하는 사람은 노래로 추모를, 춤추는 사람은 춤으로 추모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마찬가지로 이태원에서 디제잉을 하는 우리는 음악을 통해서 추모할 수 있는 거예요. 물론 국가적인 재난이나 비극이 있을 때 한 주 정도 모든 걸 스톱하는 것도 방법이에요. 슬플 때는 우는 게 맞고, 어느 정도 엄숙함이 유지되어야 하기도 하죠. 그렇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장례를 치를 때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면서 흥겹게 고인의 마지막을 보내주잖아요.
이태원이 다시 예전의 에너지를 되찾게 만드는 일이야말로 하나의 추모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태원을 저주받은 땅처럼 두는 게 옳은 방식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태원이라는 공간 자체가 잘못한 게 아니니까요. 다른 이유로 참사가 벌어진 거잖아요. 희생자들도 이태원의 에너지와 즐거움을 찾아서 온 사람들이고요. 그렇다면 희생자들이 원했던 그 모습으로 되돌려 놓는 게 추모라고 생각했어요."(H)
시민과 정부의 숙제로 남은 2023년 핼러윈 축제
시간은 계속 흐르고, 다시 핼러윈 시즌은 찾아올 것이다. 이들이 생각하는 2023년의 이태원 핼러윈 축제는 어떤 모습일까. H씨는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이태원에 다시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는 이태원에 갈 거예요. 그게 제가 사랑하는 공간을 회복하는 방법이기도 하니까요. 물론 힘들겠죠. 전처럼 흥이 나게 즐기지는 못할 거예요. 사람들도 이태원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가서 핼러윈을 보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적어도 저는 이태원에 남아 있고 싶어요. 아집이 아니거든요. '1년 전에 비극이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놀겠어' 같은 가벼운 마음도 아니에요. 1년 뒤에도 우리는 이태원 참사를 이런 방식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말하는 거죠."(H)
DJ Seesea씨는 예측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입을 열었다. 당연히 핼러윈 축제는 돌아와야 하지만, 아직도 많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행복하게 핼러윈을 즐길 수 있을 순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2023년, 핼러윈 축제가 더 안전해지기 위해서 실질적으로 어떤 해결책이 필요할지 물었다. Seesea씨는 시민의 감시와 문제 해결 의지를, H씨는 지자체와 정부의 통제 인력 배치를 답했다.
"시민들의 지속적인 감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 일이 아니니 모른 척 한다는 사고는 모든 문제를 키울 수 있기 때문에 항상 감시하고 서로 공유하고 보고해야 합니다. 더불어, 참된 반성과 문제 해결 의지가 있어야 진정한 치유의 과정을 밟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 없이는 침전밖에 되지 않으니까요. 하루 빨리 치유가 되고 다시 이태원에서 뛰어놀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Seesea)
"참사가 일어났던 위험한 골목들에 통제 인력을 두는 게 맞다고 봐요. 지자체나 정부에서 충분하게 관리만 해주면 더 이상 이런 일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참사를 한번 겪고 나면 '핼러윈 축제 금지', '몇 천 명 이상의 행사 금지'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행사를 아예 금지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안전하게 행사할 수 있는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봐요. 안전 정책의 미비를 보완해서 더 이상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H)
우리가 그리는 이태원의 미래
지나간 과거는 되돌릴 수 없지만, 다가올 미래는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이태원은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을까? Seesea씨는 이태원이라는 지역의 특성을 이해한 도시 운영이 필요함을 언급했다.
"이태원은 지형이 험준하고 골목들도 크기가 제 각각이고 미로처럼 지어진 도시입니다. 도로 자체도 넓지 않아 항상 정체 현상이 있는 곳이기도 하고요. 이런 특징에 걸맞은 안전한 도시 운영이 필요합니다. 이태원의 다양성을 지키면서도 고도의 상업화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지 않는 모습이면 좋겠습니다."(Seesea)
H씨는 이태원의 문화를 애정하는 마음과 함께,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이태원을 사랑해주었으면 좋겠다며 힘주어 말했다.
"이태원은 다양한 사람이 모여서 에너지를 내는 곳이에요. 이런 에너지를 발산하는 공간은 서울 어디에도 없죠. 우리가 과거로 완전히 돌아갈 수는 없을 거예요. 그렇지만 과거보다 더 나은 에너지를 만들 수는 있겠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고요. 여러 클럽도, 이태원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도, 모두 이태원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어요.
작년, 올해, 내년… 앞으로 많은 사람이, 그리고 저보다 더 어린 친구들도 이태원에 놀러 올 거란 말이죠. 이태원 클럽 음악이 재밌다, 이태원에는 다양하고 독특한 음식을 먹어 볼 수 있다 등 여러 가지 이유로요. 그런 유입들이 계속해서 잘 융화되었으면 해요. 이태원이 지금보다 더 사랑받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H)
이태원의 회복을 바라는 의미로 시작된 이번 프로젝트, '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태원에서 다시 놀 수 있을지를 물었다.
"사실 저는 지금도 이태원에서 놀고 있어요. '다시 놀고 싶다'라는 말보다는, 이미 놀고 있으니 '같이 놀자'가 더 적절한 것 같아요. 이태원에는 재밌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어요. 꼭 놀러 오시면 좋겠어요. 오시면 벌겋게 취한 제 모습도 볼 수 있을 거예요. 여름에 이태원은 진짜 재밌거든요. 대로변 근처에서 편의점 캔맥주를 마시면 진짜 좋아요. 조금 습하지만 새벽바람도 불고요. 아, 물론 분리수거를 잘하셔야 해요. 딱 한 잔만 먹고, 그러다 보면 다시 또 음악을 들으러 가고 싶어질 거예요. 음악을 듣다가 첫 차를 타거나, 해장 플레이스에서 서로 마주칠 수 있겠죠. 이태원은 그런 재미가 있는 곳입니다."(H)
- 인터뷰어 : 신솔아 / 인터뷰이 : H, DJ See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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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구에서 주민들과 마을방송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지역에 주요 현안을 콘텐츠로 제작하고 지역주민과 청소년 대상 라디오 교육을 통해 라디오방송 DJ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2012년부터 용산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비영리민간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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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뷸런스 소리에 패닉... 아직도 이태원 1번출구 못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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