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어느 대학 출신이세요?>는 대학 이름이 '계급장'이 되고 '차별의 도구'가 되는 사회를 '지방대'라는 시선으로 분석한 책이다.
오월의봄
요즘 아이들은 지방대를 '등록금만 내면 받아주는 곳'으로 여긴다. 그들에게 '대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대학의 마지노선은 지방 대도시의 거점 국립대다. 흔히 줄여서 '지거국'이라고 부르는데, '서울 입성'은 실패했지만 나름 입시 준비를 열심히 했다고 인정받는 기준점이다.
숫자로 치면 대다수인 지방의 사립대는 아이들의 눈높이에선 이미 대학이 아니다. 마땅히 갈 데가 없어 입학은 하지만, 언제든 기회가 닿으면 다른 데로 옮기거나 주저 없이 그만둘 수도 있다. 딱히 우리 학교라는 소속감도 없고, 남들 앞에서 학교 이름을 밝히는 것도 꺼린다.
고등학교에서 진학 실적을 소개하는 데에서도 지방의 사립대는 아예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 '의치한약'과 'SKY'로부터 시작해 이른바 '서울 상위 10개 대학'과 나머지 '인 서울 대학' 그리고 '지거국'이 끝이다. 이들의 합격자 수를 합치면 전체 응시생의 얼추 30%쯤 된다.
서열화한 학벌 구조 속에서 나머지 70%는 어쩔 수 없이 지방의 사립대에 진학한다. 지방의 사립대도 위치한 도시의 규모에 따라 서열이 매겨지긴 하지만, 별다른 의미도 영향도 없다. 아이들은 그들 간의 서열 경쟁을 두고 '지잡대끼리의 도토리 키 재기'라고 비아냥거린다.
전국의 모든 수험생이 오매불망 서울로 진학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현실이다. 와중에 서울이라는 이름은 아이들에게 하나의 거대한 '상징 자본'이 됐다. 지방에 사는 아이들에게 꼭 대학 진학이 아니어도 서울살이는 로망이 됐고, 고향이 서울이거나 서울에 사는 친구는 그 자체로 부러움의 대상이다.
급기야 요즘 아이들에게 서울대는 우리나라 최고의 학부라는 관악산 아래 서울대가 아니라 '서울에 자리한 대학'으로 의미가 확장됐다. 우스갯소리일지언정 그만큼 '인 서울'하기가 힘들다는 방증이다. 덩달아 기존 '인 서울 대학'의 범주는 서울 주변 수도권으로 넓혀지고 있다.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 듣자니까, 과거 봉건 시대에나 어울릴 법한 이 말이 어느 학교 교실의 급훈이라고 한다. 교육의 당면 목표가 서울로의 대학 진학이라는 뜻이다. 서울과 지방의 경계가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기준선임을 학교가 나서서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학교가 열 명 중 두세 명에 불과한 아이들을 위해 대다수인 나머지 아이들을 대놓고 소외시키는 행태다. "서울에 가야 사람대접 받는다"는 아이들의 말은 기실 스스로 체득한 게 아니라 기성세대로부터 오랫동안 길들어 학습된 것이다. 그중에도 학교가 주범 노릇을 했다.
서울 사는 아이들은 지방을 '유배지'로 여기고, 지방에 사는 아이들은 모두 해바라기처럼 서울만 쳐다보는 현실이 완화하기는커녕 나날이 심각해지는 양상이다. 서울은 모든 걸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고, 지방은 소멸을 우려할 정도로 무력해졌다. 이제는 지방의 대도시마저 위험하다.
서울의 식민지, 그 열패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