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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치대 열풍과 도박 중독은 동전의 양면?

[아이들은 나의 스승] 꿈의 획일화와 도박 사이트 기웃거리는 아이들

등록 2023.12.11 17:05수정 2023.12.11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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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럽지도 않은 통계 하나. 플랫폼 크리에이터, 곧 유튜버가 초등학생은 물론, 중학생의 장래 희망으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공부깨나 한다는 고등학생들의 꿈은 하나같이 의·치대 진학이라는 것. 날이 갈수록 심해져만 가는, 우리나라 아이들의 '꿈의 획일화' 현상이다.

이유는 굳이 물어보나 마나다. 부자로 살고 싶다는 것. 솔직해지자면, 돈을 쉽고 편하게 많이 벌겠다는 욕망이다. 절대다수의 유튜버가 조회 수와 연동되는 광고 수입만으로 생계를 꾸릴 수 없다는 현실을 모를 리 없는데도 그렇다. 요즘 아이들은 유튜브를 '도깨비방망이'인 양 여긴다.

의·치대 진학을 두고선 '가성비 갑'의 투자라고 생각한다. 진학은 하늘의 별 따기이지만, 일단 합격만 하면 평생 풍요와 행복이 보장된다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의·치대 진학을 위해 재수, 삼수는 기본이다. 의·치대 신입생 중 고등학교를 졸업한 해에 바로 입학한 경우는 열 명 중 채 한 명도 안 된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 앞에 '의대 진학' 광고 문구가 적혀 있다. 2023.10.17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 앞에 '의대 진학' 광고 문구가 적혀 있다. 2023.10.17연합뉴스
 
언제부턴가 우리나라 최고 학부인 서울대 공대는 '의·치대 사관학교'라고 불린다. 카이스트(KAIST)와 포스텍(POSTECH)의 내로라하는 과학 영재들도 이미 마음은 '콩밭'에 가 있다. 이젠 학원가의 '초등 의대반'을 넘어 '의대 유치원'까지 등장할 태세다. 기초과학의 붕괴를 우려할 만한 상황이다.

학창 시절 성적이 비슷했던 두 친구의 '엇갈린 운명' 이야기는 기성세대가 아이들에게 건네는 전가의 보도다. 지방 사립대 의대에 진학한 A와 공학자를 꿈꾸며 서울대 공대를 선택한 B의 현재 삶의 질이 극과 극이라는 이야기. 이젠 둘 중 서울대 공대를 추천하는 교사는 아예 없다. 

"돈이 전부"

돈 앞에서 특기와 적성 따위는 개나 줘야 할 판이다. 이젠 학교의 역할이라고 여겨왔던 각자의 적성에 따른 진학 상담도 무의미한 지경에 이르렀다. 점수와 등급에 따라 진학할 대학과 학과가 자동 변별된다. 노파심에 강조하거니와, 이는 학교의 부실한 진로 교육 탓이 아니다.

진학이든 진로든 돈이 선택의 유일한 기준이다. 천진난만한 10대 아이들조차 "돈이 전부"라고 잘라 말한다. 허구한 날 돈, 돈 하면서도 일말의 부끄러움이나 거리낌도 없다. "돈만 있으면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 빼놓곤 뭐든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기성세대의 비루한 인식 뺨친다.


친구들 앞에서 돈을 펑펑 쓰는 걸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아이들도 여럿이다. 기성세대가 명품 구매로 자기를 과시하는 행태와 별반 다르지 않다. 70~80만 원짜리 패딩과 운동화는 굴러다니듯 흔하고, 150만 원짜리 태블릿피시와 100만 원짜리 가방이 더는 드물지 않다.

사용하던 스마트폰이 질렸다며 백몇십만 원짜리 새것을 금세 다시 장만하는 모습은 낯설기만 하다. 싼 게 비지떡이라며 보급형은 거들떠보지 않는다는 한 아이의 거드름 앞에선 할 말을 잃는다. 귀에 꽂고 다니는 30여만 원짜리 무선 이어폰이 되레 검소한 물건처럼 느껴질 정도다.


아이들은 기성세대의 거울상이다. 평소 돈 씀씀이가 크면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않을뿐더러 주변엔 늘 친구들이 북적인다. 우정마저도 돈에 좌우되는 시절이다. 오래전 '부자되세요'라는 덕담과 '당신이 어디에 사는가가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준다'는 어느 아파트의 광고 문구를 조금도 민망해하지 않는다.

자녀 사랑을 돈으로 표현하는 부모도 적지 않다. 고등학생 정도 되면 서로 바빠 함께 식사하거나 도란도란 이야기 나눌 여유는커녕 얼굴 볼 짬조차 없다. 부모로서 시간 내어 챙겨주지 못한 미안함을 돈으로 대신하려는 것이다. 더욱이 건사할 자녀의 수도 많아야 둘이다.

'돈이 전부'임을 철석같이 믿는 아이들에게 돈은 인생의 목표일 뿐만 아니라, 사물의 모든 가치를 평가하는 유일한 잣대다. 물건도 시간도 재능도 모두 돈으로 환산되어 서열이 매겨진다. 직업이 무엇이든 각자 인생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건 상대적 비교가 가능한 연봉 액수다.

유튜브와 게임 다음으로 자주 접속하는 도박 사이트

아이들도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 용돈 정도로 만족하지 못하겠다는 듯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려고 한다. 만약 로또를 살 수 있는 연령 제한이 없다면, 거리의 로또 판매점은 등하굣길 아이들로 장사진을 이룰 것이다. 주식 투자 동아리는 최근 학교마다 대세로 자리 잡았다.

이 와중에 적잖은 아이들이 인터넷 도박 사이트를 기웃거리고 있다. 로또든 주식이든 미성년의 학생 신분에 합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곳이 막혀 있어서다. 돈을 쉽고 편하게 많이 벌겠다는 비뚤어진 욕망 앞에 불법이라는 말이 주는 공포심은 별것 아닌 걸로 치부된다.

아이들의 손엔 최신 스마트폰이 쥐어져 있고, 가정과 학교 어느 곳이든 와이파이가 설치되어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다. 스마트폰 활용 수업이나 인터넷 강의를 들을 땐 '선용'되지만, 그 외 시간에는 '악용'되기 일쑤다. 몇몇 아이들의 전언에 따르면, 유튜브나 게임 다음으로 자주 접속하는 곳이 인터넷 도박 사이트라고 한다.

무엇보다 가입하고 베팅하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다. 그 흔한 성인 인증 절차조차도 없어 스마트폰과 인터넷 활용에 익숙하다면 초등학생도 접근할 수 있다. 도박 중독 증세를 보이는 아이들의 사례를 조사해 보면, 중학생 때 여러 도박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돈맛'을 알아버린 경우가 태반이다.

아이들의 베팅을 유도하는 인터넷 도박 사이트는 모두 불법이다. 대개 서버가 외국에 있어서 우리 정부가 손쓰기도 어렵다고 한다. 불법 사이트인 까닭에 운영 과정에서도 불법이 횡행한다. 운영자가 사이트를 의도적으로 '폭파'한 후 잠적해 피해를 봤다는 한 아이의 경험담도 들을 수 있었다.

베팅 액수도 점점 커져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는 일도 허다하다. 문제는 도중 부모와 교사에게 이실직고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의외로 적다는 점이다.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도박 빚을 스스로 해결하려다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고야 만다.

그들은 당장 주위 친구들에게 손을 벌리게 된다. 그다음은 기성세대가 카드빚 돌려막듯 빚을 빚으로 막아야 한다. 친구들에게 변통하다 적게는 몇만 원에서, 많게는 몇십만 원의 빚을 진 아이가 드물지 않다. 이쯤 되면 용돈을 아껴 쓰는 것만으로는 빚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전북 무주 국립청소년인터넷드림마을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사이버도박 치유프로그램'에 참석한 학생들이 메모지에 각오를 써놨다. 2023.11.15
전북 무주 국립청소년인터넷드림마을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사이버도박 치유프로그램'에 참석한 학생들이 메모지에 각오를 써놨다. 2023.11.15연합뉴스

막다른 길에 이르면, 친구들의 물건에 손을 대기도 한다. 교실에 CCTV가 설치되어 있지 않고, 소지품 검사도 함부로 못 한다는 점을 악용하는 것이다. 요즘엔 '돈이 제법 되는' 것들이 많고, 중고 물품을 거래하는 인터넷 사이트도 성업 중이라 어렵지 않게 현금화할 수 있다.

무선 이어폰과 태블릿피시의 전자펜 등이 주요 타깃이다. 다른 기기와 호환이 쉽고, 사용한 제품이라도 가격이 크게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폰과 연동되는 에어팟의 경우, 학교에선 하루가 멀다 않고 분실 신고가 들어온다. 잃어버린 에어팟을 다시 찾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학교마다 도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심한 경우, 절도 행위조차 서슴지 않는다. 중학교 때 '바늘 도둑'이었던 아이가 고등학교 와서는 '소 도둑'이 되고, 돈 씀씀이도 그만큼 헤퍼진다. 아이들조차 '돈이 전부'라고 철석같이 믿는 우리 사회의 당연한 귀결이다.

돈에 얽매이지 않은 삶을 위하여

최근 학교마다 아이들의 도박 중독 예방을 위한 캠페인이 이어지고 있다. 단속과 처벌보다 사전 교육이 우선이며, 예방이 교육의 본령이라는 점에서 외려 늦은 감마저 있다. 아울러 불법 도박 사이트 근절을 위한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이 병행되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세상 살아가는 데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기성세대가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퇴직 후 대학원 진학을 염두에 둔 한 선배 교사가 내겐 귀감이다. 그에게 "그 나이까지 공부를 계속하려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더니, 단 1초의 주저함도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돈의 위세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서!"

그는 연신 돈에 얽매이지 않은 삶이야말로 교육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조차 돈, 돈 하는 세태는 우리 교육이 황폐화하고 있다는 방증이며, '꿈의 획일화'와 도박 중독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거다. '교양은 자본주의의 해독제'라는 그의 카톡 상태 메시지가 뇌리에 강렬하게 남았다.
#불법도박 #도박중독예방교육 #유튜버장래희망 #의치대선호현상 #기초과학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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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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