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 후 설거지를 하는 모습
곽규현
그런데 은퇴 후 바깥 활동을 한다고는 하지만 막상 은퇴 이전보다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고 집밥을 먹는 끼니가 많아지면서, 그냥 바깥 활동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안일과 부부 관계에 있어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했다.
내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서라도 아내가 주로 해왔던 가사 노동에 동참하기로 했다. 집안 청소를 할 때는 내가 청소기를 밀고 아내는 밀대 걸레질을 한다. 아내가 세탁기를 돌리면 빨래를 널고 개는 것은 내가 한다. 집안 쓰레기를 분리하고 배출하는 것도 함께한다. 아내가 요리를 하면 나는 옆에서 지켜보고 보조를 한다. 식사를 하고 나면 설거지도 번갈아서 한다.
집안일 나눠 하니 더 돈독해진 부부 사이
집안일을 아내와 함께 나눠 하면서, 우리 부부 사이는 더욱 돈독해졌다. 아내와 함께하는 집안일들이 하나의 놀이처럼 부담이 없다. 집안일도 일이어서 이게 항상 좋을 수는 없지만, 아내는 내가 바깥에서 좋아하는 일을 즐기면서도 집안일을 나누어서 하니 마음이 더 편해진 듯하다. 이제 우리 부부는 같이 있는 시간들을 불편하기보다 소중하게 여긴다.
아내도 내가 없이 혼자 사는 세상은 상상하기 싫다 하고, 나 역시 아내 없는 세상은 생각하기 싫다. 나이가 들어가니 언젠가는 우리가 원치 않는 이별의 순간이 오겠지만, 지금은 함께하는 이 시간들의 행복을 이야기하며 웃는 날이 많다. 각자 일은 따로, 집안일은 같이 하는 생활에 적응되면서 진정한 인생의 동반자가 된 느낌이다.
아내가 해왔던 집안일을 같이 하다 보니 매일 반복되는 가사 노동이 만만치 않음을 실감하고 있다. 특히 하루 세 끼를 준비하여 먹는 게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걸 실감했다.
끼니마다 음식을 마련해야 하고, 먹던 반찬이 떨어지면 새로운 반찬을 만들어야 하고, 매번 똑같은 음식은 물리니 메뉴를 바꾸어야 되고... 먹거리 고민에다, 식사를 하고 나면 설거지도 해야 하고, 여기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까지 처리해야 한다. 이런 게 끼니마다 되풀이되는 일상이니 가사 노동에 주부들이 지치는 것도 이해가 된다.
은퇴 이후 '삼식이' 남편에다 경제적 어려움이 겹쳐서 그런지 최근 50세 이상의 황혼 이혼이 증가 추세에 있다고 한다. 오죽하면 20~30년을 함께 살아온 부부가 이혼을 할까 싶지만, 사실 늙어갈수록 노년의 쓸쓸함과 외로움은 더해진다.
남편들의 은퇴 이후, 부부 관계에서는 서로를 인생의 동반자로 보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역지사지가 필요한 것 같다. 아내들은 그동안 가장으로서 가족들을 위해 고생한 남편들을 따뜻한 위로와 연민의 정으로 바라볼 수는 없을까. 남편들은 은퇴 없는 가사 노동에 지친 아내들을 위해 집안일을 분담하거나 아내를 좀 쉬게 하는 배려를 할 수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