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된 철릭을 입은 한복제작자 엄대정
엄대정
일상 속에서 전통 한복을 입는다면, TPO(시간 time, 장소 place, 상황 occasion)에 맞출 수 있을까.
"저는 다양한 종류의 한복이 TPO를 충분히 맞출 수 있다고 생각해요. 상례 때는 삼베에 두건을 쓰고, 결혼식에서는 도포나 창의를 걸치면 됩니다. 저는 외할아버지 장례식에서 삼베옷을 입었어요. 다른 분들은 저를 보고 의아해했지만, 외할머니께서는 옛 상례를 떠올리시고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죠. 이후로 저는 할머니의 가장 아끼는 손자가 되었답니다.
또 대학 면접을 볼 때도 전통한복을 입었어요. 저는 내년 한국전통문화대 전통섬유학과 24학번으로 입학합니다. 전통에 조예가 깊은 학교 특성상 가끔씩 한복 차림으로 면접을 보는 사람이 있다고 해요. 저도 그중 한 명이랍니다.(웃음)"
그는 전통한복을 입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제작까지 한다. 가위로 원단을 자르고, 바늘에 실을 꿰어 한복을 만든다.
"한복 제작을 손바느질로 맡기면 최소 150만 원이 들어요. 높은 가격으로 인해 주문제작에 부담을 느꼈죠. 주문을 맡기더라도 그 과정에서 세부적인 디테일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결과물이 아쉽더라고요. 또 조선시대 때는 손바느질로 한복을 만들었고, 일부는 부업으로 삼기도 했어요. 때문에 '나도 한복을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으로 제작하게 됐어요."
그의 한복에 대한 열정은,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을 만큼의 역사 지식을 갖는 데까지 발전했다.
"한번은 제게 '대갓은 양반이, 중갓과 소갓은 중인이 썼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계셨어요. 저는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첩을 보여드렸습니다. 갓 크기는 신분에 따른 제약이 없어요. 다만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양반은 갓에 비단을 씌우고, 중인은 모시를 둘렀죠. 신윤복의 풍속화첩을 보면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과 연주를 즐기는 사람의 갓 크기가 같아요. 악공은 중인에 속하고, 연주를 즐기는 사람은 양반입니다. 이처럼 신분에 따라 갓의 재료는 다르지만, 크기는 동일하기 때문에 갓으로 신분을 구별할 수 없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림과 함께 설명해 드리니 수긍하시더라고요."
물론, 한복을 입는 그를 향해 의아한 시선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한복을 입을수록, 시선은 신경쓰지 않게 됐다고 했다.
"예전에 집을 나설 때는 평범하게 입을지, 한복을 입을지 고민하곤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저를 희한하게 보는) 모르는 사람을 계속 보게 될 것도 아니고 혹여 인연이 이어진다고 해도 그분이 저를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지금까지 전통을 사랑하고 실천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무언가에 집념을 갖기 위해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도,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도 결국 똑같은 인간이에요. '나는 그 사람과 다르니까 못해'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포기한다면, 많은 것을 놓치게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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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면접 때 한복을 입고 갔고, 붙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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