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틈없이 움직이는 예산농산물유통센터(APC) 선별기에서 직원들이 빠른 손놀림으로 사과를 분류하고 있다.
<무한정보> 황동환
한 사과 농민은 "엔비사과 판매와 묘목 판매 등의 모든 권한을 외지업체가 가지고 있고, 능금조합은 선별해주는 일꾼으로 전락했다"고 실랄한 비판을 내놓는다.
후지·홍로 사과농가들에 따르면 "15년 전 뉴질랜드에서 엔비사과가 도입되면서 예산군에 엔비사과협의회라는 단체가 생겼고, 이 단체를 능금조합에서 맡다보니 계속 그쪽 농가만 신경쓰고 있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며 "어느 날부턴가 능금조합이 운영하는 APC가 엔비 선별작업에 들어가면 후지, 홍로 등 다른 품종 농가들의 설 자리가 점점 사라지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군에 따르면 지난 2009년 기후온난화와 농산물 수입개방 등에 대비하기 위해 당시 뉴질랜드 엔자사와 협약을 맺고 엔비(ENBY)사과 등 묘목 30주를 도입해 시험재배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 2월 기준 군내 엔비사과 재배면적은 142㏊, 연간 생산량 3370톤으로 성장했다.
도입 당시 동북아시아에서 한국과 독점계약을 맺고, 예산군이 선점을 했기 때문에 판로 등을 걱정하지 않고 안정적인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점에 기대 많은 농가들이 엔비사과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그렇다고 엔비사과 농가들의 상황이 호락호락한 것만은 아니다.
외형적 성장과 달리 농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한 계약재배가 오히려 족쇄가 되면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농가들이 있다. 회사와 맺은 계약 때문에 자신이 공들여 재배해 얻은 결실을 마음대로 팔지 못할뿐만 아니라 선별과정에서 비품비율이 많이 나와도 딱히 이의제기를 못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더해 판매 금액을 3회로 나눠주기 때문에 농가입장에서 목돈을 쥐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가 회사 모르게 팔다 걸리면, '회사가 지정해 준 장소에서만 팔 수 있다'는 계약 때문에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또 농협 입장에서 엔비사과 선별 작업만으로는 조합 운영에 한계가 있기에 자체 판매를 병행한다. 착색이 더딘 예산 후지사과 대신, 이미 선별이 끝나 포장만 해도 팔 수 있는 경상도 등 예산 이외의 산지 사과를 구매해 팔면서, 결과적으로 예산사과는 이래저래 조합으로부터도 외면 당하는 모양새다.
그러는 사이 가격 흥정에 능란한 외지 장사꾼들이 직접 농가를 찾아 거래하면서 일부 농가들은 생산·판매·유통 모두 신경을 써야하는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또 예산군에 사과 품질 향상을 위해 기술 지도를 하는 사과전문 기술지도사가 오랫동안 없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 역시 예산사과가 외지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정연순 예산군사과발전연구회장은 "무주군, 장수군, 청송군 등의 농업기술센터에도 사과전문 기술지도사가 있는데 우리지역은 없다"며 "지난해까지만 해도 그동안 농업기술센터뿐만 아니라 군청과 조합 어디에도 전문 지도사가 없었던 것은 아쉽다"라고 말했다.
이에 박상서 예산능금농협 상임이사는 "조합에 사과·배·복숭아·포도 등의 과수농가들을 상담하는 전문지도사 3명과 최근 교수 1명을 새로 채용해 교육하고 있다"며 "전문지도사가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사과농가들을 조합원으로 둔 능금조합이 농가들에 타작물 재배를 권하는 상황은 아이러니다. 권오영 예산능금농협 조합장은 지난해 펴낸 '예산사과 100년사'에서 "예산능금농협을 원예농협으로 탈바꿈시키면 조합원이 생산한 모든 농산물을 팔 수 있다"는 표현으로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그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조합이 엔비사과 선별, 타지사과 판매, 농약판매, 공판장, 묘목사업, 주유소 사업 등으로 수익을 얻는 동안, 조합과 조합원 쌍방이 서로에게 거는 기대가 낮아지면서 결국 조합이 자기 정체성을 잃은 결과 때문은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에 박 상임이사는 "2000여 명에 달했던 조합원이 1000명 밑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조합이 사과 농가들만을 붙잡고 운영할 순 없다"며 "조합이 사업을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원예산업으로의 변경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고, 현재도 사과와 배뿐만 아니라 포도, 복숭아, 체리 등 모든 과일을 다 취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윤익로 전 예산능금농협조합장은 "예산군은 토양이 다른 지역보다 우수하고, 천혜의 기후조건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예산사과는 50년 뒤에도 발전할 것이다"라고 낙관했다.
그러면서 "현 조합이 예산사과를 사양산업으로 판단하고 원예조합으로 바꾸려는 이야기가 들리는데, 6~7년 전에도 조합명칭을 변경하려다 총회에서 부결된 일이 있었다"며 "농민은 토양개량, 기술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행정은 과수산업 발전을 위한 정책지원이 필요하다. 예산능금농협은 내일 인류가 망할지라도 오늘 사과를 심겠다는 기조를 끝까지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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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사과 재배 역사 100년, 풀어야 할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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