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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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병원에서 17년을 간호사로 일했고 현재는 간호대학의 교수로 재직중이다. 정부와 대한간협이 간호대 입학정원을 2025년부터 매년 1000명씩 증원할 것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간호사 인력부족을 해결하겠다는 건데,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우리나라 간호사 인력 부족의 본질은 배출되는 간호사 수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병원에서 적정한 간호사 수보다 턱없이 부족한 인력을 배치하여 환자를 보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간호사 2-3명이 해야 할 일을 혼자서 해야 하므로 과도한 업무 과중을 버텨내지 못하고 떠나고, 빈 자리는 또 새로운 사람이 와서 채우고 또 떠나고, 이렇게 밑 빠진 독에 계속 물을 붇고 있는 형국임을 정부와 간협은 정말 모르는 것인가? 아니면, 알면서 모른 척 하는 것인가, 지금의 상황이 기득권을 지키기에 유리한 구조이기 때문에 묵인하는 것인가.
그동안 간호사 인력부족에 대한 해결책이라는 명분으로 정부는 간호대 정원을 지속적으로 늘려왔고 그 결과 우리나라 간호인력 배출 증가 속도는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빠르고 간호사 수도 평균보다 훨씬 높다. 그러나 실제로 임상에서 일하는 간호사의 수는 OECD 평균보다 매우 낮다. 절반 정도가 장롱면허라는 이야기이다. 청운의 꿈을 품고 간호대학생이 되어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어려운 공부와 병원 실습 등을 하며 힘든 공부를 마치고도 왜 그들은 간호사로서 일을 하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현장에 답이 있다. 우리나라 간호사들의 업무환경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그 중에서 병원 현장에서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는 간호사 일인당 환자수이다. 2016년 간호행정학회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간호사 일인당 환자수는 16명에 이르며, 이는 미국의 5.3명, 영국의 8.6명에 비하면 2-3배 많은 수준이다. 간호사들은 밥도 못먹고 일하고(63.2%) 노동강도의 심화(86.5%), 사고위험 노출(72.1%), 안전사고 발생위험 증가(81.0%) 속에서 일하고 있다.
업무 역할도 법적으로 구체적으로 규정되지 않아서 병원의 많은 업무들이 간호사의 역할로 떠넘겨진다. 간호 업무 만으로도 2-3배 벅찬 현실에서 의사, 약사 등 다른 직종의 업무를 떠맡기기 일쑤이며 역할이 애매한 일들, 심지어 이송, 청소 업무까지 다 간호사가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다 보니 업무강도는 극에 달한다.
소수의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의사집단은 '진료보조'라는 애매한 법적 규정 아래에서 간호사에게 수많은 일들을 시킨다. 간호사들은 법적으로 허용된 업무인지 규정조차 되지 않은 수많은 일들을 수행하며 그 범위는 지난 수십년간 확대되어왔고, 이제는 현실에 맞는 법적 체계 아래에서 일하고 싶다는 당연한 요구(간호법)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신규간호사에게는 업무에 적응할 시간도 충분히 주지 않은 채, 오롯이 환자의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간호사로서 일을 당장 해내라 한다. 학생 시절에 똘똘하고 열심히 공부했던 학생이 꿈에 그리던 병원에 취업하고는 나를 찾아와, 병원 출근하기가 무섭다며 울던 일이 떠오른다. 단 하나의 실수라도 환자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업무들을 짧은 시간안에 속사포처럼 해내야 하는 신규 간호사의 부담감이 그에게는 두려움 그 자체였으리라. 병원은 간호사를 갈아서 운영되는 것 같다고 현장 간호사들은 이야기한다. 고강도의 노동과 휴식 부족은 위염, 방광염, 근골격계 질환, 불면증 등으로 나타난다. 워라벨도 힘들고 임신 육아는 더욱 힘들다.
혹독한 업무 환경, 열악한 처우
혹독한 업무 환경에 비해 처우는 너무나 열악하다. 간호사 급여는 고용된 의사의 1/4에 불과하고 약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며, 근로자 전체 평균 임금보다 5% 낮다. 전문성과 업무 강도에 비해 너무 낮은 처우다. 그런데 이런 격차는 점차 커지고 있다. 심지어 2018년 기준 1년차 간호사의 11.4%의 간호사가 최저임금을 수령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게다가 요즘은 동네병원에서 간호사인지 조무사인지 모를 애매한 인력들이 버젓이 간호사 행세를 하는 모습을 보면 국민 건강권에 대한 우려와 함께 간호사의 자존감은 나락으로 떨어진다.(출처: '한국 병원간호사의 직무 스트레스 요인과 속성: 간호사 직무스트레스 측정도구 개발 연구의 이차자료분석')
이런 현실속에서 왜 정부는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간호대 정원을 늘리고자 하는 걸까? 의사들이 왜 의대 정원 늘리는 것을 목숨 걸고 반대하는지 이유를 아는가? 정원을 제한해서 소수가 독점하는 이윤과 기득권을 지키려고 하는 것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결과 지방 병원에서는 연봉 4억을 줘도 의사를 구할 수 없고 동네 소아과 의사 만나려 새벽부터 줄을 서야 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갖가지 논리를 대며 의사 수를 늘려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고 아직도 주장한다.
하물며 간호사가 이렇게 많은 국내에서 간호사가 부족하니까 배출을 늘려야 한다는 논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값싼 인력 시장에서 손쉽게 간호사를 고용하여 최대한 많은 환자를 맡기고 최고의 이윤을 얻으려는 기득권 집단의 욕구에 충실한 논리가 아닌가. 국민보건 정책에 대한 깊은 천착 없이 기득권의 요구에만 충실해온 게으르고 무능한 정부의 합작품, 그야말로 이권 카르텔의 결과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무능하고 게으른 정부는 그렇다 치자. 헌데 간호사의 대표라고 하는 간협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간호대 정원 증가에 동의하는 건지 묻고 싶다. 언제든 다른 간호사로 대체될 수 있는 값싼 인력시장을 만들고 싶은 건가? 그것이 국민 보건을 위해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하는가? 지금까지 늘어난 간호대 정원만으로도 실습병원과 환경을 구하기 어려워 많은 간호대학에서 고전하고 있는 현실임을 간협이 정말 모르고 있다는 말인가?
마땅한 실습병원도, 실습환경도 갖추어지지 않은 질 낮은 교육을 받고 졸업하는 간호사를 양산해 내어 국민의 건강을 맡기는 것이 진정 간협의 바람이란 말인가? 고강도, 고위험의 업무속에서 밥도 굶어가며 열심히 일하고 있는 우리 간호사들, 꿈을 안고 간호대학에 와서 공부했지만 결국 한국의 간호현장을 떠나는 친구들, 그런 고급 인력들을 붙잡고 숙련된 인력을 유지하는 것이 국민 건강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간호사의 대표기관이라는 간협은 정말 모른단 말인가? 값싸고 질 낮은 간호사들을 풍부하게 양산해내는 인력시장을 만드는 데에 일조하는 것이 설마 간협의 바람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더 이상의 간호대 정원 증가는 답이 될 수 없다. 오히려 반드시 막아야만 한다.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인해 병원에 입사한 신규간호사들의 사직률은 점차 증가하여, 이제 1년안에 절반 넘는 간호사들이 병원을 떠난다. 그들의 빈자리는 또 신규가 메운다. 업무에 숙련되지 않은 간호사들이 현장에 즐비할 때, 시한폭탄이 터지는 것을 막아야 하는 숙련간호사들의 업무부담은 더 가중되고, 예정된 의료사고는 언젠가는 터지며 환자들의 생명은 위협받는다.
질 낮은 간호사를 무수히 양산해 내는 것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심각하게 위협할 뿐 아니라, 꿈을 안고 열심히 공부한 우리 학생들이, 우리 후배들이 낮은 처우를 받으며 일하는 지금의 현실을 더 열악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정부와 간협은 기득권 집단의 논리와 어떤 사심에도 휘말리지 말고 우리나라 보건의료의 건실한 체계와 국민 건강권 수호를 위해서 올바른 정책을 펼치기 바란다. 자격에 맞는 교육과 훈련을 받은 건강한 간호사가 국민을 간호하며 보람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건강한 세상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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