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내복 사이즈를 확인해보고 한 치수 작은 사이즈로 주문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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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망하게 어머님을 보내드리고 나니 처음 암진단을 받던 때로 자꾸 생각이 돌아간다. 같이 김장을 해놓고 차를 마시며 얘기를 할 때였다. 요즘 피곤해서 그런지 가슴이 푹 꺼졌다고 "좀 쉬면 낫겠지?" 하고 말씀하셨다.
"어머님, 피곤하다고 가슴이 꺼지는 일은 없어요. 월요일에 바로 병원 가보셔야 해요."
그렇게 간 병원에서 의사는 검사도 하지 않고 가슴을 보자마자 왜 이제 병원에 오셨냐고 했다. 알고보니 국민건강보험에서 매년 알려오는 건강검진은 잘 받아왔지만 따로 예약해야 하는 유방 검사나 위, 대장 내시경 검사 같은 것은 하지 않으셨던 거였다.
시어머님상을 치르면서 떠오르는 단 하나의 생각은 '좀 더 잘해드릴 걸'이었다. 우리 부부가 삼십 대고 아이들이 어릴 때는 같이 제주도 여행도 가고 짧은 국내여행도 가고 했었다. 사십 대에 와서는 달라졌다. 아이들도 커서 각자의 학원 스케줄이 생기고 내야하는 학원비 규모가 달라지는 와중에도 남편은 시간강사를 하고 있던 시기, 우리에게는 그야말로 암흑기였다.
남편이 제대로 된 직장을 가져보지도 못하고 공부하느라 고생만 하다 나이 때문에 기회의 문이 닫혀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속앓이를 하던 그 시절, 내 마음은 강퍅할 대로 강퍅해져 있었다. 친정엄마가 시어머니 병세를 걱정하면서 '좋은 음식 드시게 신경써라, 더 잘 해드려라' 할 때 '엄마 내가 이 이상 어떻게 잘해?' 농반 진반 대꾸했었다.
후회가 됩니다, 결심도 합니다
나의 할머니이자 엄마의 시어머니가 요양병원에서 10년 넘게 계시는 동안 매일 입에 맞는 국과 반찬을 준비해서 병원을 찾았던 엄마는 '그래도 가시고 나면 아쉬움이 남는 법이다' 하셨었다.
이제 엄마가 하신 말뜻을 알겠다. 돈과 시간이 여유 있을 때 부모님께 효도하려고 해도 부모님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말이 내 이야기가 될 줄은 몰랐다.
같이 식사를 할 생각은 했어도 건강검진을 챙기지 못했다. 목욕이라도 자주 모시고 다녔으면 조금 더 일찍 알아차리지 않았을까. 하다못해 내복과 양말이라도 새것으로 해마다 사드렸다면, 그래서 집에서 입고 계시던 내복이 해지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죄송하지는 않았을 텐데. 후회가 된다.
이제 혼자 남아계신 아버님께는 매년 건강검진도 꼬박꼬박 잡아 드리고, 남편이 한국에 나와 있는 동안에는 목욕도 자주 모시고 다니면서 몸을 살펴드리라고 해야겠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어리석은 자의 뒤늦은 결심이다.
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 70년대생 동년배들이 고민하는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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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새 내복을 못 입어보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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