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고 많은 시민들이 우크라이나의 평화와 전쟁 중단을 촉구하며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하지만 적극적인 반전 운동의 분위기는 오래 가지 못했다.
전쟁없는세상
'누구 편이냐'는 질문
전쟁이 시작되면, 모두가 이렇게 묻는 듯하다. '넌 누구 편이니?' 전쟁의 잔혹한 피해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뉴스 속 장면들 앞에서 이 질문에 답하지 않기란 너무나도 곤란한 일이다. 공습과 전쟁범죄로 사람들이 죽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 가해를 마주하면, 나쁜 놈, 나쁜 나라가 누군지 너무도 뻔하게 보이는 것만 같다. 그러나 누구 편을 들거냐는 질문으로는 전쟁을 끝낼 수도, 예방할 수도 없다.
'누구 편을 들거냐'는 질문은 더 많은 군사지원, 더 많은 군사비, 더 많은 무기거래로 이어진다. 지난 8년 동안 전 세계의 군사비 지출은 계속해서 증가해왔다.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시작된 2022년에는 전 세계가 한 해 동안 약 2조2400억 달러의 군사비를 지출했다. 한화로는 약 2980조 원. 너무 커서 감도 안 오는 이 숫자를 평화활동가들이 현실감을 더해 '번역'해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 '1분에 56억 원.' 1분마다 56억 원이란 돈이 전쟁과 전쟁 준비에 쓰인 것이다.
당연하게도 유럽에서 군사비가 많이 늘었다. 이미 군사비 지출이 큰 서부 및 중부 유럽 국가들이 전쟁 발발 이후 군사장비와 병력을 늘리고,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을 하며 군사비가 이 지역에서만 13% 증가했다(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 2023). 분쟁을 완화하거나 관리하는 데 쓰일 수 있는 자원이나 기회는 영토 방어에 집중된 군사활동에만 쓰였다.
1970년대 유럽지역의 긴장완화를 위해 설립된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역시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페미니스트 평화학 연구자 베티 리어든(2020)은 "전쟁은 근원적으로 서로에게 폭력을 쓰도록 연루된 집단들의 준비 태세에 따라 그 지속 여부가 결정된다(p.99)"고 말한다. 그의 말을 빌려 위의 숫자들을 들여다보면, 이 전쟁을 끝내겠다는 의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누구 편을 들거냐'는 질문은 시민사회 안에서도 강력하게 작동한다. 침공에 명확한 비판을 펼치면서도, 군사적 지원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평화단체들은 때때로 크고 작은 반발을 마주한다. 2022년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이 시작되자, 국내 시민사회단체는 연대체 우크라이나 평화행동을 꾸려 집회와 행진, 기자회견 등을 조직했다. 이 활동의 초반에는 재한 우크라이나인들 역시 발언이나 집회 기획 과정에 참여했지만, 군사적인 지원에 대한 입장 차이로 연대활동을 이어가지 못했다.
병역거부 운동을 하는 평화운동단체들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의 병역거부자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펼쳐왔는데, 때때로 이런 반응을 마주하기도 했다. 그들도 침략국 국적을 가진 사람들인데 왜 침략국의 병역거부자들을 지원하냐는 것이다. 피침략국 병역거부자를 지원하는 활동의 경우, 그런 배신자를 지원하냐는 비난 역시 익숙하다.
군사주의의 언어는 철저한 이분법으로 구성되고 발화된다. 아군 아니면 적군. 전쟁은 그 이분법을 더욱 극대화 시킨다. 그 이분법의 언어는 앞의 예시에서 보여주듯 시민들 사이의 연대 역시 어렵게 만든다. 전쟁이 나서 평화운동이 더 잘될 거라고 순진한 기대를 했던 2년 전을 떠올려보면, 평화운동은 이런 이분법에 유의미한 균열을 내는 데 실패했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
질문을 바꿔야 보이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