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일반주택가영국 일반 주택가 모습
김명주
"갑자기 집을 비우라니, 나는 그럼 어디로 가야 하나요?"
BBC 아침 뉴스에 한 아이 엄마의 인터뷰가 나왔다. 퇴거 요청에 죽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말이다. '얼마나 절실하면 저런 마음이 들었을까.' 싶다. 영국 집값도 팬데믹 이후로 급격히 올랐다. 집을 구하는 사회 초년생들은 집을 살 수 있는 희망이 없어졌다고 한탄이고, 소득에 비해 집 월세가 너무 올라 생활고를 호소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사가 매일 넘쳐 난다.
아직 영국으로 이민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든 것이 낯설던 때, 우리는 '4인 가족이 생활하기 안전하고 학교 등교 하기 좋은 곳'에 월셋집을 얻기로 한다. 대학 도시라 연수나 강의하러 파견된 4인 가족들이 제법 많아 월세집 구하기 경쟁이 심했다. 살기 괜찮겠다 싶어 집 보러 가는 날짜를 잡으면 바로 다음날 이미 월세가 나갔다는 메시지가 오는 그런 상황이었다.
처음 예상보다 월세 수준을 조금 더 올려 다시 찾기 시작한다. 깔끔하게 잘 관리된 집이 나타났다. 단 깐깐하게 생긴 여주인이 중개인 옆에서 인터뷰를 같이 하고 있는 모습이 좀 남다르다 싶기는 했다.
계약서를 보니 1년에 한 번씩 집 설비 확인에 협조한다는 조항이 있다. 내가 집주인일 때 그 당시 세입자가 문을 열어주지 않아 제 때 수리를 못했던 경험이 있다. 내 집뿐만 아니라 아파트 아래층 벽지 공사까지 다 감당해야 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그 조항에 흔쾌히 동의했다. 아이들 학교 통학 하기도 편하고 집 상태도 깔끔하니 들어와 살면서 더 마음에 든다. 그렇게 우리는 새로운 나라, 새로운 학교 그리고 새 이웃과도 차차 적응해 갔다.
누군가 집을 한 번 훑어본 느낌
문제는 이사 들어온 지 6개월 즈음 발생했다. 부엌 배수구에 문제가 생겼다. 집 주인에 전화를 하니 자신의 동거인이 기술자라면서 그 사람을 보내겠단다. 우리는 그날 휴가 예정이었기에 '그럼 잘 고쳐 놓으시라' 집을 비우고 평안히 휴가를 다녀왔다.
그 본능적인 느낌이 있다. 누군가 집을 한 번 훑어본 느낌. 아니나 다를까 배수구 고치러 온 동거인을 따라 집주인이 집안을 다 둘러보고는 A4종이 한 장을 보내왔다. "오븐을 잘 닦아 써주세요", "마당 잔풀 정리를 자주 해주세요", "아이방 커튼봉이 헐거워졌네요" 같은 내용이었다.
나는 무단침입이라며 노발대발이었고 남편은 부동산과 집주인에게 이메일로 항의 내용을 적어 보냈다. 다음날, 집주인이 "미안합니다" 사과를 하러 왔다. 나는 미리 온다 약속도 없이 대문을 두드린다 또 노발대발이었지만, 남편은 사과하러 왔으니 이번 만은 넘겨 주자 한다. 아마도 가장의 마음에서 우리 가족의 편의도 고려해야 했던 상황이라 좀 더 너그러울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는 좀 조심하는가 싶더니 집주인은 다시 나의 신경을 긁기 시작했다. 나사가 하나 빠졌다든지, 아이가 벽에 스티커 붙인 것을 들먹일 때면 천불이 난다. 내가 공짜로 살고 있는가. 비싼 월세를 단 한번 어김없이 제 날짜에 송금하고 있다. 나보다는 원만한 남편 덕에 그렇게 저렇게 3년이 지났다.
그러던 어느 날, 정기 가스 점검이 있으니 꼭 열어달라고 한다. 설비 점검이니 문을 열어줬다. 가스 점검원 두 명, 집주인 그리고 부동산 중개인. 그렇게 네 명이 서 있다. 이미 와 있는 사람들 돌아가라 하기는 마음이 좋지 않아 다들 들어와 볼 수 있도록 공간을 내어줬다.
2주 후, 집주인이 아닌 부동산 중개인이 A4 종이 한 장을 들고 대문을 두드렸다.
"21조에 의거 집주인이 집을 팔고자 하니 세입자는 두 달 안에 집을 비워주세요"
사전에 아무런 통보 없이 대뜸 법 조항을 들고 나가 달라고 했다. 예전에 남 일처럼 시청하던 BBC 방송이 기억난다. 내가 직접 그 상황을 당해보니 어안이 벙벙하다. 갑자기 집을 비우라니.
다행히 이렇게 저렇게 자금을 끌어모으니 이번에는 집을 구매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렇게 급하게 집을 찾는 것이 맞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매일 집들을 보러 다닌다. 빠듯한 자금에 적당한 위치의 집을 찾으려니 할 수 있는 발품을 열심히 팔아본다.
집 구조 확인은 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