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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시대가 살기 좋았다'는 정치인이 읽어야 할 책

[서평] 일제강점기 시대 조선인 남녀의 삶을 다룬 소설 '그곳에 엄마가 있었어'

등록 2024.03.18 16:54수정 2024.03.18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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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정모 소설 '그곳에 엄마가 있었어'
윤정모 소설 '그곳에 엄마가 있었어'다산책방
 
일제에 의해 강제로 전쟁터로 끌려간 부친, 같은 방식으로 전쟁의 한복판으로 끌려 들어간 어머니.

윤정모의 소설 <그곳에 엄마가 있었어>는 지난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1940년대의 아픈 기억을 담고 있다. 각기 따로 기술돼 있으나, 1910년~1945년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온갖 고통을 겪었던 조선인 남녀의 삶을 통해 나라 잃은 백성의 힘들었던 삶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 엄마가 있었어>는 신춘문예 당선자 배문하가 부친의 부음을 듣고 안동으로 찾아가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부친이라고는 해도 호적에만 올라 있을 뿐 같이 살지도 않았고, 인정받지 못한 사생아 배문하에게는 남이나 마찬가지인 존재였다. 그렇지만 유일한 혈육이라는 이유로 전달된 부고를 외면할 수 없었던 모친의 뜻에 따라 장례식장으로 찾아간 것이었다.


거기서 유품으로 받아온 부친 배광수의 일기장은 그를 그가 알지 못했던 오래전 과거로 안내하는 길잡이였다. 왜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살지 못했고, 모친이 아들인 자신을 호적에 올리기 위해 부친을 찾아가 사정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풀 수 있게 한 열쇠이기도 했다.

유품 속 일기에는 1943년 10월부터 일본 패망이 가까웠던 1945년 6월까지의 기록이 담겨 있었다. 일본군에 강제 징집을 피해 숨어 있다가 발각돼 억지로 끌려간 전쟁터에 끌려갔던,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찰나의 순간을 수없이 겪어야 했던 청년 배광수의 전장 기록이었다.

그리고, 젊은 시절 부친의 기록에는 나타나지 않은 비어있던 공간을 채워준 것은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남긴 또 하나의 기록과 이야기. 부친이 생부가 아닐 거라 생각했던 추측의 진위를 또렷하게 해준다.

군국주의 일본의 범죄에 대한 공소장

<그곳에 엄마가 있었어>는 가족사를 줄기로 하고 있으나, 한편으론 전쟁 막바지 시기 버마(현 미얀마)전선을 중심으로 군국주의 전범 일본이 저지른 반인권적 만행을 고발하는 작품이다. 일본의 범죄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한을 남기게 했는지를 문학적 수사로 정리한 공소장이기도 하다.


소설을 통해 태평양 전쟁 시기 동남아 전선에 내몰렸던 조선인 징병자들의 일상과 삶을 세세하게 묘사했고, 당시 전쟁터로 끌려갔던 조선 청년들의 고뇌를 담아내고 있는 건 주목되는 문학적 성취이기도 하다.

탈출하기도 어렵고 탈출한다 해도 밀림을 헤매고 다닐 수밖에 없는, 어떤 선택이든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지옥 같은 상황 등을 깊이 있게 그려내면서 당시 전장의 실상을 전하고 있다. 풍토병과 전투 중 부상으로 인해 고향을 그리워하며 생을 마치는 젊음의 모습을 통해, 식민지 백성으로 살아야 했던 지난 역사의 상처를 절절하게 전달한다.


소설 속 배문하의 어머니 김순이의 과거는 여성으로서 당해야 하는 고통이었다. 가난한 나라에서 힘겹게 생을 이어가던 10대 학생들이 전쟁터로 끌려가 일본군 위안부로 유린되던 과정의 기록과 증언은, 돌이킬 수 없는 지난 시간에 대한 애타는 절규로 다가온다. 나라 잃은 백성이 수탈당하고 인권까지 바닥으로 팽개쳐지는 장면을 읽어내려가면서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게 된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실제 증언은 이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어떤 이는 죽음보다 못했던 삶이라고 자책하기도 했으나, 살아남은 자들은 고통스런 기억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는 일본군과 함께 옥쇄 당하거나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던 친구 동료들을 향한 진혼곡으로 남아, 지난 역사를 돌이키게 한다. 1940년대 조선 청년들이 겪은 아픔이 얼마나 깊고, 결코 치유될 수 없는 상처인지를 되새기고 또 되새긴다.

친일 망언 정치인들에게 권하는 책
 
 윤정모 작가
윤정모 작가성하훈
 
저자인 윤정모 작가는 1980년대 후반 <고삐>를 통해 성매매 여성을 중심으로 그 근원에 있는 제국주의의 문제를 파헤쳤다. 이번 소설도 그 문제의식의 연장선에 있다.

저자는 작가의 말을 통해 "1981년 임종국 선생께서 '위안부로 끌려간 우리 처녀들에 대하여 아는 사람만 아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제는 국민에게 참상을 알리는 일을 해야한다. 소설을 써라'고 말씀했다"며 "이 소설 속 내용은 모두 사실이다"라고 강조한다.

임종국 선생은 문학평론가이자 역사학자로 친일반민족행위자 연구에 평생을 바쳐 그 기초를 닦았는데, 윤정모 작가는 1982년 일제의 강압으로 고통당했던 위안부 피해를 담은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를 통해 임종국 선생의 당부를 실천했다.

이후 40년이 지나 더 확장된 내용인 <그곳에 엄마가 있었다>를 내놓은 것은, 아픔이 대대로 내려오며 여전히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사과도 받지 못한 채 몇 남지 않은 위안부 피해자들은 세상을 등지고 있고, 정부는 오래전 나라를 잃었을 때와 비슷하게 일본과의 관계만 신경쓸 뿐 이들의 아픔을 외면하려는 모습이다.

세상을 등지고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을, 문학을 통해 계속 알리고 경각심을 일깨우려는 작가의 의지가 담겨있다. 소설 속 조선 청년들은 윤정모 작가의 부모 세대기도 하다.

이 소설이 무게 있게 다가오는 것은 최근 정치인들의 도를 넘는 망언 때문이기도 하다. "조선 백성들은 봉건적 조선 지배를 받는 것보다는 일제강점기에 더 살기가 좋았을지도 모른다"라는 말로 논란이 된 정치인 말이다.

'구한말에 백성들이 수탈을 당하고 굉장히 괴로웠을 것인데 차라리 일본의 지배를 받는 게 더 사정이 좋지 않았겠느냐'는 어떤 정치인의 인식은, 일제의 만행 속에 고통당한 사람들의 아픔을 무시한 채 깊은 상처를 헤집고 조롱하고 모욕하는 능멸이 언어일 뿐이다(관련 기사: 국힘 조수연 "조선 봉건 지배보다 일제강점기가 더 좋았을지 몰라" https://omn.kr/27suj ).

논란이 불거진 뒤 형식적으로 사과한다고 해서 잘못된 인식의 천박함이 사라지는 것이 아닐 것이기에, 정치보다는 이 책에 기록된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을 직접 읽어보고 새기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이토 히로부미를 긍정적 대상으로 묘사하는 등 친일 망언을 거침없이 해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일부 총선 후보들에게, 부디 이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그곳에 엄마가 있었어

윤정모 (지은이),
다산책방, 2023


#그곳에엄마가있었어 #윤정모 #일제 #위안부 #소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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