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모 소설 '그곳에 엄마가 있었어'
다산책방
일제에 의해 강제로 전쟁터로 끌려간 부친, 같은 방식으로 전쟁의 한복판으로 끌려 들어간 어머니.
윤정모의 소설 <그곳에 엄마가 있었어>는 지난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1940년대의 아픈 기억을 담고 있다. 각기 따로 기술돼 있으나, 1910년~1945년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온갖 고통을 겪었던 조선인 남녀의 삶을 통해 나라 잃은 백성의 힘들었던 삶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 엄마가 있었어>는 신춘문예 당선자 배문하가 부친의 부음을 듣고 안동으로 찾아가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부친이라고는 해도 호적에만 올라 있을 뿐 같이 살지도 않았고, 인정받지 못한 사생아 배문하에게는 남이나 마찬가지인 존재였다. 그렇지만 유일한 혈육이라는 이유로 전달된 부고를 외면할 수 없었던 모친의 뜻에 따라 장례식장으로 찾아간 것이었다.
거기서 유품으로 받아온 부친 배광수의 일기장은 그를 그가 알지 못했던 오래전 과거로 안내하는 길잡이였다. 왜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살지 못했고, 모친이 아들인 자신을 호적에 올리기 위해 부친을 찾아가 사정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풀 수 있게 한 열쇠이기도 했다.
유품 속 일기에는 1943년 10월부터 일본 패망이 가까웠던 1945년 6월까지의 기록이 담겨 있었다. 일본군에 강제 징집을 피해 숨어 있다가 발각돼 억지로 끌려간 전쟁터에 끌려갔던,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찰나의 순간을 수없이 겪어야 했던 청년 배광수의 전장 기록이었다.
그리고, 젊은 시절 부친의 기록에는 나타나지 않은 비어있던 공간을 채워준 것은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남긴 또 하나의 기록과 이야기. 부친이 생부가 아닐 거라 생각했던 추측의 진위를 또렷하게 해준다.
군국주의 일본의 범죄에 대한 공소장
<그곳에 엄마가 있었어>는 가족사를 줄기로 하고 있으나, 한편으론 전쟁 막바지 시기 버마(현 미얀마)전선을 중심으로 군국주의 전범 일본이 저지른 반인권적 만행을 고발하는 작품이다. 일본의 범죄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한을 남기게 했는지를 문학적 수사로 정리한 공소장이기도 하다.
소설을 통해 태평양 전쟁 시기 동남아 전선에 내몰렸던 조선인 징병자들의 일상과 삶을 세세하게 묘사했고, 당시 전쟁터로 끌려갔던 조선 청년들의 고뇌를 담아내고 있는 건 주목되는 문학적 성취이기도 하다.
탈출하기도 어렵고 탈출한다 해도 밀림을 헤매고 다닐 수밖에 없는, 어떤 선택이든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지옥 같은 상황 등을 깊이 있게 그려내면서 당시 전장의 실상을 전하고 있다. 풍토병과 전투 중 부상으로 인해 고향을 그리워하며 생을 마치는 젊음의 모습을 통해, 식민지 백성으로 살아야 했던 지난 역사의 상처를 절절하게 전달한다.
소설 속 배문하의 어머니 김순이의 과거는 여성으로서 당해야 하는 고통이었다. 가난한 나라에서 힘겹게 생을 이어가던 10대 학생들이 전쟁터로 끌려가 일본군 위안부로 유린되던 과정의 기록과 증언은, 돌이킬 수 없는 지난 시간에 대한 애타는 절규로 다가온다. 나라 잃은 백성이 수탈당하고 인권까지 바닥으로 팽개쳐지는 장면을 읽어내려가면서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게 된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실제 증언은 이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어떤 이는 죽음보다 못했던 삶이라고 자책하기도 했으나, 살아남은 자들은 고통스런 기억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는 일본군과 함께 옥쇄 당하거나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던 친구 동료들을 향한 진혼곡으로 남아, 지난 역사를 돌이키게 한다. 1940년대 조선 청년들이 겪은 아픔이 얼마나 깊고, 결코 치유될 수 없는 상처인지를 되새기고 또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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